홍해선교회 조완길 목사

    지난 8월 15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중재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 그리고 이스라엘과 바레인이 평화 협정을 체결하고 국교를 수립했다. 그들은 평화 협정의 명칭을‘아브라함 협정’이라고 했다. 이 협정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아랍권 4개국과 평화 조약을 맺게 되었다. 1948년에 독립 국가를 세운 이후 이슬람 국가로부터 위협을 받아왔던 이스라엘이 평화의 언덕에 오르는 것 같다. 그러나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순니파 수장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승인 하에 UAE와 바레인이 평화협정에 조인했으므로 순니파 무슬림들은 중도를 지키고 있으나, 시아파의 수장인 이란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그리고 극단주의 무슬림들은 그 협정을 비난하고 있다. 지금은 미국의 Pax Romana로 인해 다 꺼져가는 불씨와 같이 숨을 고르고 있지만 언제라도 강한 샤리아 바람이 불어오면 불일 듯 일어나 활활 타오를 것이다. 그 해답이 꾸란에 있다. 무슬림들은 알라가 저주받은 유대인 일부를 원숭이와 돼지로 바꿔버렸다(꾸란5:63)고 믿고 있다. 꾸란 9:5에는 알라를 믿지 않는 자를 살해하고 포로로 잡거나 포위하라, 만약 그들이 무슬림이 되거나 자카트를 낼 경우 그들의 길을 열어 주라고 했다. 무함마드와 꾸란을 절대 신뢰하고 있는 무슬림들이 저주받은 유대인들과 협상을 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랍인과 유대인은 다 같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민족이 철천지원수가 되어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이유는 결코 이슬람과 유대교 사이의 종교적 갈등만이 아니다. 두 민족의 비극적인 역사 배후에 서구 세계의 정치, 경제, 그리고 군사 등 비종교적인 영향력이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AD 70년에 로마의 침공으로 BC 13세기 초부터 민족의 뿌리를 내리고 살던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전 세계로 분산되었다. 특히 유럽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은 모진 박해를 받으며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유럽인들의 끊임없는 박해에 항거하던 유대인들은 1897년 테오도르 헤르즐(Theodor Herzl)박사를 중심으로 스위스 바젤에서 첫 시오니스트 의회를 조직했다. 그리고 그들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민족국가를 세워주는 대가로 영국의 유럽 전쟁에 협력을 했다. 그러나 영국은 유대인에게 민족국가 건설을 약속함과 동시에 오스만제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팔레스타인에 아랍국가 건설을 약속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후 영국은 1917년 11월 2일의 발포어 선언(Balfour Declaration)을 통해 유대인의 팔레스타인으로의 귀환을 허락하고 아랍과의 약속을 저버렸다. 그리고 철저하게 친 유대 반 아랍 정책을 펴게 되므로 팔레스타인에서는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면서 유혈 충돌사태가 빈번히 발생했다. 종전을 앞두고 영국, 프랑스. 아랍 연합군이 대부분의 아랍 지역을 점령하게 되었다. 그때에 미국 대통령 월슨(Wilson)이 민족 자결주의를 원칙으로 한 14개조 항을 공표하자(1918년 1월 8일) 아랍인들은 1918년 10월 3일 베이루트에서 아랍 독립국을 선포하고 아랍기를 게양했다. 그러나 영국군이 아랍기의 하기를 명령하고 아랍 독립국 선포를 무효화하였다. 이때부터 서구와 아랍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 와중에 유대인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하자(1948) 마침내 아랍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기독교 국가인 영국의 배신으로 화가 난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이 연합하여 지하드를 선포하고 여러 차례 이스라엘을 공격하였으나 패배하고 말았다. 또한 이스라엘이 1950년 1월에 유엔의 결의를 무시하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결정하였으나 이스라엘의 국제법 위반에 대한 서방의 제재 조치가 없자 아랍은 더욱 서방을 불신하게 되었다. 

 

     그 후 1967년에 일어난 6일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이 구 예루살렘을 점령하자 수많은 이슬람교도들이 절망하고 분노하였다. 그 시기에 알 야세르 아라파트에 의해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가 조직이 되었고, 그 기구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식 대화의 파트너가 되었다. 그러나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이 1978년에 UN과 미국의 조언으로 이스라엘과 캠프데이비드(Camp David) 협정에 서명하고 이스라엘과 국교를 수립하자 중동 전역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며, 이란은 이스라엘과 미국을 이슬람 세계의 최대의 적으로 간주했다. 그 후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 도처에서 지하드 단체가 결성되었다. 지하드 단체 중 하나인 알카에다의 지도자 빈 라덴은 1998년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파트와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미국인과 그 지지자는 시민과 군인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죽이라는 판결은 이 일이 가능한 국가에 살고 있는 모든 무슬림의 의무다. 이 일은 알-아크사 모스크와 신성한 모스크(메카)를 그들의 손아귀에서 해방시키고, 그들의 군대를 모든 이슬람 땅에서 몰아내어 더 이상 무슬림을 위협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빈라덴은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극단주의 무슬림들의 가슴에는 빈라덴의 이데올로기가 살아있다. 그것이 1400년 동안 무슬림의 혈관을 타고 내려온 무함마드의 이념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사회의 안보와 세계 평화를 위해서 강력하게 대응을 해야 한다. 그러나 친 이스라엘 정책으로 일관했던 과거의 악습을 버리고 아랍 세계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변화 없이는 중동 지역에서의 선교의 전망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