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중앙연합감리교회 주활 담임목사

    <신(新)정글의 법칙> 얼마 전 한국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정글의 법칙이란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정글과 사막, 바다와 산, 더운 곳과 추운 곳, 고산지대, 문명이 닿지 않은 원주민들 사이를 오가면서 생존해 가는 모습을 전해줄 때 참 흥미롭게 보곤 했습니다. 정글의 법칙이란 영어단어 ‘the Rule of Jungle’은 약육강식(弱肉强食)이란 말로 번역이 되어 있었습니다. 약육강식이란 약한 자는 강한 자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는 정글 속 짐승들의 먹이사슬에 대한 표현인데 그 말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 약한 자는 강한 자의 밥이 되는 험한 세상을 나타내는 단어로 쓰여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TV에서 보는 정글의 법칙에서는 전혀 다른 정글의 법칙을 보게 됩니다. 모두가 먹을 것이 부족한 가운데 어렵사리 얻은 작은 양식 한 조각을 불에 구울 때 모두 침을 삼키며 바라보지만 그 작은 음식을 자기 입에 먼저 넣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다 익히고는 서로 먹여주며 다른 사람의 입에 먼저 넣어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극한의 추위 속에서 지낼 때에는 서로 몸을 붙여 추위를 녹여줍니다. 추운 곳에서 강을 건너기 위해 누군가 물에 들어가야 할 때 리더인 병만족장과 또 누군가 먼저 영하의 물속을 뛰어들어 물건과 사람들을 업어 건네 줍니다. 밀림 속에서 갈증 날 때 잎사귀에 묻은 이슬을 모아 만든 한 모금의 식수도 자기가 먼저 먹지 않고 옆의 동료에게 먼저 나눠 줍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누군가 몸이 아프고 고통을 겪게 될 때 모두 함께 아파하며 잠을 못 이루고 서로 아픈 동료를 찾아보며 함께 고통을 나누곤 합니다.

    힘들고 낯선 환경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동료들을 격려해 주며 함께 가도록 도와주는 모습들을 보면서 이 정글의 법칙은 우리가 아는 약육강식의 세상 속의 정글의 법칙이 아니었습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도와주라는 성경의 가르침이 녹아있는 새로운 정글의 법칙을 볼 수 있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세상의 정글 안에는 여전히 맹수의 발톱과 이빨로 우리를 노리는 세상의 원리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물질도 법도 권세나 물리적인 힘도 여전히 정글의 법칙의 논리로 세상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세상을 살아가면서 약육강식의 논리에 중독된 맹수들의 전쟁터가 아닌 사랑하며 섬기며 나누며 살아가려는 새로운 정글의 법칙으로 가득찬 세상을 꿈꿔 본다면 정말 현실감 없는 망상에 불과한 걸까요? 아니면 가능하다고 믿고 오늘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징검다리 하나를 놓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좋습니다> 4년 전 한국에서 열리고 있는 하나의 이벤트에 전 세계가 집중한 적이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갖춘 알파고라는 컴퓨터와 세계 최고의 바둑기사인 이세돌 9단과의 대국이었습니다. 과연 인간이 만든 컴퓨터가 인간을 이길 수 있을까에 모두 관심을 기울이면서 치러지는 바둑대국이기 때문입니다. 다섯 번의 대국에서 4승1패로 컴퓨터인 알파고가 이겼고 이 일로 인해 세계가 충격에 빠졌습니다. 패배의 원인조차 쉽게 찾을 수 없는 그런 시합이었고 지금까지 오랜 세월 전해지고 훈련해온 바둑고수들의 내공과 능력도 무력화시키는 새로운 수와 길들을 보여주면서 바둑계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지난 1000년동안 쌓아온 바둑의 수를 알파고가 모두 섭렵하고 있고 매 순간 1000여개의 CPU가 연결되어 있어 1000여명의 바둑기사가 훈수를 두고 있는 것과 같은 능력에서 이세돌 9단 혼자 이것을 감당하며 이기기란 불가능한 일이라고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만든 구글에서는 누가 이겨도 인간의 승리라고 말하며 그들의 주가를 높여가고 있었습니다. 이 대국을 바라보면서 기계와 인간의 게임에서 기계가 이겼다고 하지만 기계에는 없고 인간에게 있는 감정이라는 영역에 눈을 돌려 보게 됩니다. 이세돌 9단이 진 이유가 감정 없이 이기기 위해 정보로만 움직여지는 알파고에 비해 감정이 계속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면 느끼는 두려움, 불안, 놀라움, 초조함 등 이런 감정이 게임을 방해하기도 하고 그르치기도 하기 때문이죠. 그 대국에서 질 때 이세돌 인간대표가 느끼는 감정은 허탈감, 놀라움, 두려움들로 채워졌을 겁니다. 그러나 알파고는 이기기 위한 기계로 이기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불현듯 과거에 있었던 한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보다 인터넷 설교와 강의를 많이 들었던 한 성도가 제자훈련 자리에서 이런 것은 자기는 다 안다고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그만둔 일이 있었습니다. 제겐 참 충격이었습니다.

    인터넷만 열면 세상의 모든 지식과 정보가 가득한 세대에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도 인터넷만 열면 세상의 유명한 명설교와 강의와 말씀이 가득합니다. 이것에 익숙해 지면서 웬만한 설교와 말씀에는 눈도 끔쩍하지 않고 가슴도 뛰지 않고 은혜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알파고와의 바둑 대국을 보면서 이런 모습이 자꾸 떠오릅니다. 기계같이 말씀이 정보가 돼서 차곡차곡 머리에 쌓아져서 우리를 오만하게 만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겸손함보다 기계 앞에서 다른 우상을 놓고 예배하려는 이 세대의 영적인 상황에 전율이 느껴집니다. 두려움과 불안함, 슬픔과 아픔 그리고 즐거움과 행복함을 느끼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선물입니다. 이런 세대의 산물들을 보면서 울 수 있고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 안에 기쁨과 행복이 물들어 있음을 아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 참 감사하게 여겨집니다. 게임에 진다 해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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