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만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상대방을 부르는 ‘호칭’ 이다. 이 호칭은 직업에 따라 대부분 결정된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에게 맞는 ‘직함’을 붙여서 불러야 하지만 그것이 좀처럼 입에 잘 붙질 않는다.

 특히 상대방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먼저 안면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난감하다. 필자의 경우는 만나는 사람의 대부분이 연륜이 많은 사람들이어서 이름에 ‘씨’만 붙여서 부르는 것은 실례일 수 있다. 자칫 건방지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러한 호칭에 대해서 자주 고민해왔다. 특히나 요즘같이 뚜렷한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더욱 그렇다. 생판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고민스러울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어색하게 얘기를 끝맺지도 못하고 얼렁뚱땅 그 자리를 모면하고 싶어진다.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 편해야 대화의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고, 진실된 얘기도 오간다. 어떤 호칭을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헤어진 후에도 좋은 이미지를 남길 수 있다.

 한인사회에는 ‘사장님’과 ‘회장님’이 유독 많다. 이곳 콜로라도에는 비지니스를 운영하는 한인들이 많아서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부담 없이 부를 수 있어 다행스럽기도 하다. ‘회장님’ 이라는 호칭은 한국의 경우처럼 그룹 회장의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이 협회장을 지낸 경력에서 비롯된 호칭이다. 이것 또한 돈을 받지 않는 명예직이긴 해도 단체에서 붙여진 직책이기 때문에 불러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직함은 직업을 나타내는 것보다, 신분을 나타낸다는 표현으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선생님, 변호사님, 목사님 등에는 ‘님’자를 꼬박꼬박 붙여 사용한다. 하지만 환경미화님, 농부님, 어부님, 광부님 이라고는 부르지 않는다. 알고 보면 존칭이 붙는 직함은 몇 개 없다. 국회의원, 판사, 의사, 선생 등 모두 따져도 스무 개 정도밖에 되질 않는다. 요즘에는 3만여 개가 넘는 직업이 있다지만 1%미만의 직업에게만 존칭이 주어지는 직함으로 불려진다. 이것은 부모들에게    “당신 아이가 나중에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는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 나오는 답과 일맥상통한다. 그만큼 자녀들이 존경 받는 인물로 성장하길 바래서이다. 

 그래서 이 곳에서도 사람을 부를 때 존칭이 섞인 직함을 부르는 것은 ‘당신은 특별한 신분을 가졌습니다’ 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렇다 보니 사람을 실없이 치켜세우는 분위기가 자주 조장된다. 사장이 아닌 사람들도‘사장님’으로, 한인사회에 민폐만 끼쳤던 협회장에게도 전관예우를 적용해 ‘회장님’이라는 호칭을 남발하는 것은 충분히 베풀고 봉사해온 진짜‘사장님’과‘회장님’에게는 기분 나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렇게 사람을 실없이 치켜세우는 직함은 오늘날 우리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사장님, 회장님, 부자 되세요’ 가 최고의 덕담이 되고, 돈이 최고다 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요즘 우리들은 사람을 인격체가 아니라‘거래처’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래도‘님’자를 붙여서 말을 하는 것이 하대(下待)하는 것 보다는 백 번 낫다. 상대방이 자리에 없다고 함부로 하대하는 것은 어느새 우리의 습관이 되어버렸다. 상대방을 얕잡아 봐서 나오는 표현은 욕설과 하대로 나눌 수 있다. 하대해도 괜찮다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이는데, 돈과 나이이다. 본인보다 돈을 많이 못 벌고, 나이가 어리다 라는 이유에서 비롯된 경우다. 얼마 전 식당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오가는 대화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됐다. 욕설과 함께“이 새끼, 저 새끼”라는 단어가 대화 속에 계속 붙어 다녔고, 60세가 훌쩍 넘은 이에 대해 말하면서도 거침없이 그의 이름을 불러댔다. 마치 자기집 개이름을 부르듯이 말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남자는 그 사람이 자신의 가게에서 일했던 직원이었다는 이유로 하대하는 것에 당당했다.

 여기서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함부로 하대를 하고, 큰 소리로 자신이 훨씬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하는 그 사람 또한 다른 사람들로부터 절대로 ‘님’자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신문사에서 일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전화로도 많은 사람들과 접한다. 그럴 때마다 어떤 호칭을 사용할까 고민한다. 결국 고민고민 하다가 필자가 결정한 호칭은 ‘선생님’이다. 학창시절 국어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얘기가 오래 남아있다. 선생님 이라고 부르는 건 그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배우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했었다. 누구에게든 배울 부분이 있으면 배울 것이라는 마음자세야 말로 진정한 ‘님’자를 들을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이는 상대방을 거래처가 아니라 인격체로 인정하는 시발점이기도 하다. 

 상대방을 부를 때 자신의 됨됨이도 알 수 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재산이 많다고 해서, 협회장이라고 해서 무조건 존대를 받아야 하고, 나이가 어리고, 가진 것이 없다고 해서 하대해도 된다는 식의 사고는 있을 수 없다. 진정한 예의는 아랫사람만, 윗사람에게만 제 각각에게 요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에 대한 존경심이 바탕이 되었을 때, 본인이 먼저 예의를 지킬 때 비로소 자신도 상대방에게 선생님이 될 수 있다.

 꼭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아니어도 좋다. 서로에게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의 호칭을 평소에 생각해두는 편이 좋다. 아무리 과대 포장된 호칭이라고 해도 하대하는 것보다는 백 번 낫다. 상대방을 높일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이들이라면 그들 또한 누구의 선생님이 되기에 충분하다. <편집국장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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