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회의사당 개원식에 참석해 연설을 마치고 나오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한 시민이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던졌다. 신발은 문 대통령 수미터 앞에 떨어졌고 그는 곧바로 체포되었다. 법원은 “구속의 상당성 및 필요성이 부족하다”며 그의 영장 신청은 기각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계란이나 신발을 던지는 행위는 일반적인 폭행보다 더 모욕적일 수 있다는 이유로 벌금 250만원을 선고했다. 그는 검찰에게 “문 대통령이 가짜 평화를 외치고 경제를 망가뜨리면서도 반성조차 없어 신발을 던졌다”고 말했다. 이사건으로 인해 그의 신발은 불만을 표현하는 상징처럼 되었고, 이틀 뒤 열린 부동산정책 규탄 집회에서도 참석자 5백여 명이 신발을 벗어 하늘로 던져올리는 일명 ‘신발 투척 퍼포먼스’를 벌여 현 정부 정책에 대한 반감을 표시했다. 과거를 들여다보면 정치인들은 신발과 계란 등 항상 투척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 중  노무현 대통령이 계란과 가장 인연이 깊다. 그와 계란과의 인연은 1990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3당 합당에 반대했던 노 전 대통령은 부산역 앞 시민집회에서 누군가가 던진 계란을 맞았다. 이후 2001년 민주당 고문시절에 대우자동차 부평 공장을 방문했다가 또다시 계란세례를 받았고, 민주당 대선후보 시절인 2002년 겨울, 여의도에서 열린 ‘우리 쌀 지키기 전국농민대회’에서 연설 도중 얼굴에 계란을 정확하게 맞았다. 그는 얼굴을 닦으며 "달걀을 맞아 일이 풀리면 얼마든지 맞겠다"며 연설을 끝까지 마쳤다. 2009년에는 버스를 타고 대검청사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 신발 한 짝과 날계란이 날아들었다. 노 전 대통령은 이후 ‘계란봉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정치하는 사람들이 한번씩 맞아줘야 국민들 화가 좀 안 풀리겠냐. 계란을 맞고 나면 문제가 잘 풀렸다”고 웃어넘겼다.


     김영삼·전두환 전 대통령도 퇴임 이후 계란봉변을 당했다. 지난 1999년 6월 퇴임 후 일본 출장을 가기 위해 김포공항에 나왔던 김 전 대통령은 한 재미교포가 던진 계란에 이마를 맞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지난 1998년 11월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거행된 ‘국난극복 참회 대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부인 이순자 여사 등 일행과 함께 광주공항에서 차량을 타고 정문을 빠져나가다 청년들에게 날계란세례를 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또한 대선 후보 시절 계란 때문에 수난을 당했다. 이 총재는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지난 2007년 11월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했다가 이마와 볼에 계란세례를 맞았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계란 마사지를 받아 얼굴이 예뻐졌다”는 농담으로 웃어넘겼다. 이러한 투척 봉변은 외국 지도자에게도 간간이 발생했다. 1986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남태평양의 통가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외교적으로 불편했던 통가에서 행사를 마치고 차에 타려는 순간 달걀세례를 받아 입고 있던 옷이 엉망이 되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은 다음날 통가 의회 연설에서“나는 계란을 좋아한다. 다음부터는 아침 식사 시간에 줬으면 좋겠다”라며 유머러스하게 연설을 마무리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2008년 이라크를 방문했을 때 신발투척을 당한 적이 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젊은 이라크 기자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 그로 인한 이라크 국민들의 살상 피해 사실에 항의하기 위해 연단에 선 부시에게 신발을 던진 것이다. 이를 재빠르게 피한 부시 대통령은 "이렇게라도 관심을 끌고 싶은 것을 이해한다"며 "이것이 바로 자유 사회"라며 어색한 자리를 모면했다. 신발을 투척한 기자는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으나 부시 대통령이 선처를 요청해 9개월 만에 풀려났고 이후 일약 영웅으로 떠오르며 국회의원까지 됐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신발로 상대방의 얼굴을 때리는 것이 최고의 모욕행위에 해당한다.


     2010년 9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도 자신의 회고록 첫 사인회를 위해 아일랜드 더블린 시내의 한 서점을 찾았다가 반전 시위대로부터 계란과 신발세례를 받는 수모를 겪었다. 그해 10월 존 하워드 전 호주 총리는 생방송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이 이라크전 참전 결정을 내린 것이 정당했다는 말을 하다가 한 방청객이 던진 신발 두 짝에 맞았다. 2012년 2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방문했을 당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편애는 그만하면 충분하다"라며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탑승한 차량에 슬리퍼를 던졌다. 2013년 12월 일본에서도 참의원 본회의에서 정부의 정보 통제를 강화하는 특정비밀보호법안이 가결되자 한 방청객이 신발을 던지며 항의한 바 있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도 투척세례를 피하지 못했다. 그는 2014년 4월 '고철 재활용 산업협회'가 주최한 행사에서 연설 도중 서류뭉치와 함께 구두 공격을 받았다. 이 시대에 난무하고 있는 투척 행위는 전·현직 공직자에 대한 국민들의 좌절과 분노, 항의와 경멸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투척의 반대는 무엇일까. 씻어내는 세척 정도가 아닐까 싶다. 특히 신발과 관련되어 있으니 세족(洗足)이 좋을듯 싶다. 아랍 문화권에서는 모스크에 들어가기 전 무슬림들이 꼭 손과 발에 묻은 먼지를 씻어내는데, 이는 상대에 대한 지극한 공경의 의미를 지닌다. 상대의 발을 씻어주는 세족은 종교적으로 ‘서로의 죄를 용서해 주고 허물을 덮어 주라’ 는 뜻이지만, 일상적으로는 화해·용서·사랑·공경 등 섬김의 대표적인 표현이다. 아버지 학교와 어머니 학교와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세족은 관계의 치유와 회복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요즘 들어 이러한 세족식에 대한 소식이 뜸해졌다. 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일 수도 있겠지만, 돌이켜보면 우리는 코로나 시대 이전부터 화해보다는 분노의 표현에 익숙해져 있었다. 언제까지 계속해서 신발과 계란이 눈앞으로 날아다닐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다만, 세족과 같은 미덕이 각박한 이 시대의 곳곳에 뿌리내리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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