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린의 행복찾기

 우리 집 뒷마당에는 작은 텃밭이 하나 있다. 남편과 내가 처음 집을 산 후 그 텃밭부터 일구었을 만큼 그 텃밭은 우리에게 있어서 소중한 공간이다. 매년 봄이면 거름을 사다가 뿌리고 남편과 함께 일일이 삽질을 해가며 땅을 일구고, 잡초를 뽑고, 물을 줘가며 농사를 짓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해가 갈수록 소출이 아주 형편없어지고 있다. 첫해에는 깻잎도 참 잘 되고, 가지가 휠만큼 토마토도 주렁주렁 열려 솔찮게 수확을 했었는데, 요즘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토마토도 시원찮고, 깻잎도 여름내내 한 10장 뜯어먹을 정도로 농사일에 별 재미를 못 보고 있으니 우울한 노릇이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유일하게 혼자서 알아서 크는 채소가 있으니 바로 부추였다. 부추는 따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마치 잡초처럼 무럭무럭 자라니 참 효자상품이 따로 없었다. 다만 부추로 할 수 있는게 부추전 밖에 없다보니 뜯어먹다 지쳐서 나중에는 그냥 꽃이 피든말든 내버려두곤 했다. 올해도 여전히 봄과 함께 파랗게 부추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겨울을 나고 처음 돋아나는 부추가 좋다고 들어서 욕심껏 부추를 한움큼 뜯었다. 수확이 얼마 안되어서 부추전 한번 해먹고 지인에게 한번 주고 나니 부추가 다 동이 났다. 그런데 금새 부추가 또 자라났다. 이번에는 꽤 양이 되는 듯 해서 사무실 사람들에게 갖다 줘야겠다 싶어서 뜯어서 냉장고에 넣어놨는데, 자꾸 가지고 가는 것을 잊어버리다보니 부추가 금새 시들시들해져버렸다.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져서 차라리 부추김치라도 담가야겠다 싶어서 남편에게 부추를 다듬는 걸 좀 도와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같이 다듬었는데, 갑자기 급한 전화가 와서 그 전화를 받고 나가다보니 부추 생각을 홀랑 잊어버렸다. 그 동안에 남편은 묵묵하게 쭈그리고 앉아 자기는 먹지도 않을 부추를 다듬고 있었던 모양이다. 저녁 무렵에 집에 돌아왔는데, 남편이 부추를 깨끗하게 다듬어서 싱크대 위에 올려놨다. 3시간이 걸렸다며 툴툴댄다. 고맙다고 얘기하고 일단 부추를 물에 담가놨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다. 남편이 부추 썩는다고 자꾸 채근을 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외로움과 싸워가며 힘들게 다듬어 놓았던 부추가 나의 무관심속에 물 속에서 썩어가는게 속이 상했던 모양이다. 알았다고 내일은 꼭 부추김치를 담그겠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남편이 부추김치 빨리 담그라고 성화다. 정말 성가시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냥 대충 젓갈이랑 고춧가루 버무려 넣고 부추김치를 만들었다. 그런데 정말 우연찮게 부추김치가 맛있게 됐다. 요리를 참 못하는 내가 만들고도 놀랄 만큼 맛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싱크대를 오갈때마다 나를 노려보고 있는 듯한 물속에 잠긴 부추와 부추를 다듬느라 고생한 남편에 대한 죄책감이 사라져서 좋았다. 남편의 잔소리도 사라졌다. 

 향긋한 부추 김치를 한입 먹으면서 봄을 느낀다. 3시간이나 걸려 꼼꼼하게 다듬었다는 남편의 수고와 과다한 잔소리도 느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어떻게 이런 훌륭한 부추김치를 내가 만들었을까 하는 경이로움도 느낀다. 부추 김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곰곰히 레시피를 생각해보지만, 정확히 어떻게 만들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부추 김치 하나로 참 많은 생각이 드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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