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첫 방미길에 올랐던 덩샤오핑 중국 주석은 텍사스 휴스턴의 한 목장을 방문했다. 한 미국 여성이 말을 타고 그에게 흰색 카우보이 모자를 선물했다. 관중들이 휘파람을 불자 덩샤오핑은 전해받은 모자를 쓰고 답례의 제스추어를 취했다. 지역 언론은 "덩이 텍사스 사람이 됐다"면서 괴물 같은 공산당 지도자가 아니라 보통 미국인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그해 말 중국은 휴스턴에 첫 번째 총영사관을 열었다. 그래서 휴스턴 총영사관은 미국과 중국이 외교 관계를 맺은 1979년 미국에 처음 개설된 중국 영사관으로서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그런 영사관을 미국이 먼저 폐쇄를 결정했다. 지난주 금요일 총영사관 입구에 걸려 있던 중국의 오성홍기가 내려졌고, 중국 정부의 인장과 간판도 철거됐다. 미 국무부는 이러한 결정에 대해 “미국의 지식재산권과 개인 정보를 보호하려는 조치”라고 밝혔다. 중국도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미국 정부의 이같은 조치에 맞서 곧바로 쓰촨성 청두 주재 미 총영사관을 폐쇄하기로 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지난 26일에 미 총영사관의 현판을 뗀 데 이어 성조기까지 내리며 사실상 폐쇄 절차를 마무리했다. 중국 외교부는 이러한 조치에 대해 “청두 주재 미국 총영사관 직원들이 신분에 맞지 않은 활동을 하면서 중국 내정에 간섭하고 중국의 안보 이익을 해쳤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외교 공관 폐쇄라는 초강수를 던진 배경에는 그간 미·중 간에 벌어진 무역분쟁과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다툼, 그리고 중국의 해킹과 개인정보 유출, 대선 개입 시도 등에 대한 논란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사실 중국은 세계 각국에서 지식재산권을 도용하거나 기술을 무단 확보한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일례로 지난해 11월 중국 스텔스 전투기의 외부 형태가 미국의 그것과 흡사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양국의 갈등은 더욱 첨예해졌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하필 휴스턴 주재 총영사관을 가장 먼저 폐쇄 타깃으로 삼았을까에 관심이 쏠린다. 중국은 휴스턴 외에도 워싱턴DC의 대사관,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뉴욕에 각각 총영사관을 두고 있다. 애틀란타에서는 비자만 발급한다. 휴스턴은 미국에서 샌프란시스코 못지않은 과학기술 정보의 집결지로 꼽히는 도시다. 세계 최대 의학 연구치료센터인 ‘텍사스 메디컬센터’ 클러스터의 소재지이며, 유명한 MD앤더슨 암센터와 텍사스 어린이 병원이 위치해 있는 미국 첨단 의학연구의 심장부 중의 하나다. 또 최근의 당면 과제인 코로나19와 관련한 백신이나 치료제 연구도 다양하게 진행되는 핵심 지역이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존슨우주센터도 위치해 항공우주는 물론 첨단 원천기술과 관련한 정보가 양산되는 곳이며, 중국이 유난히 관심을 쏟아온 우주 굴기와도 관련이 큰 지역이다. 영사관 직원들이 영사관 폐쇄 직전, 기밀 서류를 소각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연기가 발생하자 화재로 오인한 소방차가 출동하는 헤프닝도 벌어졌다. 이로 인해 미 국민들은 그 소각된 서류가 미국이 알아서는 안 되는 서류라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다음은 샌프란시스코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미국 주재 중국 외교공관 중 과학기술 정보가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이다.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정보통신기술 관련 연구소와 기업이 밀집한 실리콘밸리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관심을 쏟는 인공지능(AI) 관련 정보의 발원지나 다름없다. 게다가 이 지역에 있는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대학은 의학·약학·치의학 분야의 대학·연구 클러스터의 핵심이다. 또, 샌프란시스코에는 북미 최대의 차이나타운이 있다. 당연히 중국계 인구가 밀집돼 있어 중국인들이 정보 수집 활동을 하기에 유리하다. 미국이 자국 주재 중국 총영사관을 추가로 폐쇄하기로 결정한다면 다음 타깃은 샌프란시스코가 될 가능성이 큰 이유다. 중국은 1949년 공산중국을 건국한 이래 과학기술 도약을 외국에서 온 기술과 인재에 의존해왔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 박사 첸쉐썬, 퍼듀대 물리학 박사 덩자센, 프랑스 소르본대 출신의 핵물리학자 첸싼캉, 영국 버밍엄대 공학박사 야오통빈 등 해외에서 공부하고 공산중국으로 돌아온 과학기술자들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주도했다. 해외 기술과 인재를 활용해 중국의 발전을 꾀하는 전략은 21세기 중국에서도 변함이 없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미국의 과학기술과 기업의 노하우 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확보해 경제 패권국 진입에 활용하려고 시도해왔다는 것이 미국의 주장이다. 중국은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기업과 연구소, 대학, 개인에게 지식재산권료를 지급하는 대신 기술과 노하우를 가진 연구자와 경력자들에게 최고 대우를 제시하면서 중국으로 데려와 이들이 지닌 지적 재산과 기업 운영 노하우를 고스란히 흡수해왔다. 이것이 바로‘지식재산권 바이패스’ 전략이다. 그동안 미국은 지식재산권을 무시하는 중국의 이러한 관행에 대해 계속 문제를 제기해왔다.  


     지식재산권과 함께 개인정보와 내정간섭도 거론되고 있다. 중국이 해킹으로 개인정보를 유출해, 미국 대선에 개입하려 했다는 것이 FBI의 발표다. 미 국무부가 휴스턴 총영사관 폐쇄조치의 배경이라고 밝힌 지식재산권·개인정보 보호, 그리고 내정과 관련한 혐의의 실체가 무엇인지 생생하게 드러난 셈이다.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 폐쇄는 중국의 산업스파이 활동에 대해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미국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미국은 기술의 무단 이전을 차단해 중국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인공지능 산업혁명을 지연시키고 궁극적으로 시 주석의 중국몽을 저지하겠다는 목적이다. 공정한 경쟁은 환영하지만, 해킹이나 절도, 거짓말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 미국의 의지이다. 때문에 휴스턴 총영사관 폐쇄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의미로도 읽힌다.  중국 공산당이 사면초가와도 같은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지 궁금하다. 그러나 중국의 주장대로 ‘휴스턴의 자국 총영사관 폐쇄가 트럼프의 단순 선거 전략’일 뿐이라고 하기에는 중국 정부를 향한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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