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COVID-19)는 수천년간 이어져온 세상의 규범과 질서를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세상은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나눌 수 있다”라고까지 이야기 합니다. 이를 치유할 백신이 연구중이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 이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으며, 향후 2년정도는 이러한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경제활동에도 많은 제약이 생기면서 재정적인 압박에 시달리는 사람들, 사람들과 함께 모여 식사를 하며 교제할 수도 없기에 인간관계에서도 메말라가는 마음들을 보게 됩니다. 절망의 나날들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만 갑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과연 희망을 볼 수 있을까요? ‘엄마의 말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대범한 밥상’등의 작가 박완서 씨에 대한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박완서씨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잃었습니다. 1988년 남편이 폐암으로 사망한데 이어 석달 후 서울대 의대 레지던트였던 막내아들이 스물다섯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지요. 박완서씨는 당시의 고통을 너무나도 끔찍하고 고통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있을 때,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이해인 수녀님의 권유로 수도원에 들어가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삶의 의욕을 찾게 된 후 ‘대화’라는 산문집을 발표하게 됩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난 지금도 88 올림픽이라면 몸이 떨리고 무서워요. 아주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평생을 함께한 남편을 잃고, 뒤이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을 잃었는데, 어떻게 된 게 세상은 환희에 들떠 있었어요. 어디로든 숨고 싶은데 정말 숨을 곳이 없더라고요. 지옥 같은 순간을 견디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았지만, 어딜 가든지, 누굴 만나든지, 온통 기쁘고 유쾌한 얼굴뿐이었어요.… 정말 세상이 다 적 같기도 하고 환상 같기도 했다니까요. 저 혼자만 철저히 소외되어 있었어요. 혼자 이렇게 괴롭다는 게, 세상이 모두 환희에 들떠 있는데, 그 분위기가 너무 견딜 수가 없었어요. 애도해 주러, 위로해 주러 찾아온 사람들 표정을 볼 때도 모두 기쁜 마음을 숨긴 채 저러고 있기가 얼마나 어려울까 하는 응어리진 생각만 들었죠.” 너무나도 힘든 상황가운데, 절망의 늪에서 박완서씨를 건져 올린 것은 뜻밖에도 ‘밥의 힘’이었다고 합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권유로 수도원에 들어갔지만, 두달정도 식사다운 식사 한끼도 하지 못했다고 하던 그녀는 어느 날 식당에서 새어나오는 된장국 냄새를 맡게 됐습니다. 그 순간, 뱃속에서 꾸르륵 소리가 나면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혹시나 토하지는 않을까, 걱정을 안고 떠먹은 밥. 그간 음식물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속이 그날만은 거짓말처럼 소화를 시켰습니다.


   “밥을 먹으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난, 너무 슬퍼서 밥도 굶고 고상하게 죽고 싶었는데, 이렇게 배가 고픈 걸 보니 아직 살아야겠구나. 아니, 살아서 내가 할 일이 더 남아 있는 모양이구나…. 사실 돌아보면 일생 중의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가정적으로 어려운 일도 있었지만,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비교적 순탄했어요...(중략)…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닌 장거리 레이스이기에 지금 현재만으로는 삶의 질을 측정할 수 없다는 것, 행복해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농후하다는 것, 끝까지 살아봐야만 평가가 가능하다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의 묘미가 아닐는지…” 말미에 술회된 박완서의 고백은 냉혹한 현실에 지쳐 나자빠져도 우리가 살아가야 할 혹은 살만한 까닭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인생의 굴곡을 경험합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동일하지 않지만, 모두가 힘든 터널을 지나고 있지요. 그러나 그 길은 혼자 걷는게 아닙니다. 그 곳에는 하나님께서 세운 공동체, 가정이 있습니다. 가정을 또다른 말로 식구라고도 하지요. 한자로는 먹을 식(食) 입 구(口), 함께 밥을 먹는 무리입니다.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이 식구, 가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함께 모여 식사하며, 교제하던 우리의 친구, 동료, 모든 이들이 식구입니다. 모두가 쉽지 않지만 이 길을 함께 걷고 있습니다. 한국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지요. 박완서씨를 살린것도 ‘위대한 밥의 힘’이었다고 말합니다. 함께 모여 식사할 수 없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을 잘 감당하면서 희망을 꿈꾸길 소원합니다. 곧 함께 웃으며 “식사합시다!”라고 말할 날이 올 것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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