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리도 고운 오렌지 빛

그림설명: 타오르는 6월(Flaming June) 1895, oil on canvas, 48 in*48in, Museum of Art, Ponce, Puerto Rico
작가: Leighton, Frederic, Lord(1830~96) Born England

 이 그림은 Leighton이 죽기 바로 전 해에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한 젊은 여인이 은빛 바다를 배경으로 테라스에서 세상의 근심 걱정 따위는 아랑곳없이 저리도 고운 오렌지 빛으로 6월의 낮잠에 푹 빠져 있다. 그녀의 차림새를 봐서는 노동하고는 상관없어 보인다. 뽀얀 피부며 살짝 보이는 가슴의 굴곡, 영양상태가 좋아 보이는 몸매 만큼이나 얼굴도 그지없이 아름답다. 세상의 어떤 나쁜 일도 없었을 것 같은 지고지순한 얼굴이다.

 아무 생각없이 색채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볼만한 그림이다. 그 누가 Leighton 보다 더 아름답게 오렌지색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넋을 잃고 보다가 오른쪽 윗부분 난간 쪽 꽃으로 시선이 갔다. 한순간 그 꽃이 불필요한 군더더기처럼 보였다.

 "앗, 처음에는 이 꽃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 꽃이 없다면 그림이 더 편안해 보이지 않을까?"하고 생각하며 손으로 가려 보았다. 그랬다. 조금은 더 편안한 느낌은 있었지만, 하지만 뭐랄까? 김빠진 탄산음료 같은, 그리고 그림이 밑으로 쭉 빠져 버리는 구도상의 문제가... 역시!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은 꼴.
Leighton의 이런 센스는 오랜 작업의 시기를 통해 축적된 경험상의 감각 일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화가로서 타고난 감각인 것이다. 가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부모들로부터 아이들의 타고나는 것, 재능이라는 것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 한 마디로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이가 어릴수록 잠재된 재능이 많이 숨어 있다. 커지면서 본인의 성격이나 주변 환경, 부모들의 무신경 등에 그 재능들이 숨어 버리는 경우를 종종 본다. 안타깝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내 안에 숨은 재능은 40살이 되건 50살이 되건 언제든지 튀어 나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지 쓸데 없는 일에 너무 많은 힘을 쏟은 다음이라 그 시간들이 아까울 뿐이지.(세상에 쓸데없는 일이란 없지만)

 다시 그림으로 돌아와서, 뜬금없이 John Lennon의 Imagine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국가와 사상이 없는 세계, 그저 아름다움과 순수함만이 가득한 세계, 그런 세계가 이 지상에선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두가 그리워하나 보다.

 간혹 멋진 풍경이나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그림같다고 한다. 그건 우리가 꿈구는 세계일수도 있다. 그 순간에 정지되어 있을때는 지극히 아름답지만 그 다움 순간에 대부분 다 깨어져 버리기 때문에 그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욕망이 예술을 만드는게 아닐까 싶다. 저 여인이 잠에서 깨어 수세미처럼 헝클어진 채 입가의 침을 닦으며 불편하게 자서 팔과 다리가 저리다고 투덜거린다면? 그러나 우린 저 여인이 살포시 잠에서 깨어, 바다를 향해 기지개를 켜며, 고혹적인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사랑스런 포즈로 서 있기를 바란다.

 현실이 고달플수록 우리는 꿈속으로 빠져든다.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으로 나를 보내기도 한다. 가끔 말도 안되는 유치한 드라마를 열심히 보고 있는 남편을 보면 측은하기 조차 하다. 각설하고 오랫동안 나의 시선을 빼앗은 오렌지색의 순수한 아름다움이여! 영원할 지어다. <조각가 백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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