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숙 기자 수첩

 1년 전 이맘때 지인으로부터 한 권의 책을 건네 받았다. ‘교양,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책 제목은 왠지 딱딱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뒷 표지에 있는‘이라크 침공은 미국의 인문교양 교육이 실패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라는 질문이 이 책에 흥미를 느끼도록 나를 이끌었다.

 ‘교양’이라는 개념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변해왔다. 교양하면 문화적인 지식이나 감정 표현의 절제, 우아한 말과 행동이 우선적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카토 슈이치 교수는‘바람직한 교양이란 다양한 영역, 다양한 문화 사이를 오갈 때의 자유로움, 일종의 유연함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교양을 사전에서는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 또는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 인간의 정신능력을 일정한 문화이상(文化理想)에 입각, 개발하여 원만한 인격을 배양해 가는 노력과 그 성과’라고 정의하고 있다. 자유기고가 김규향이 ‘교양이란 자기가 속한 사회를 분별하는 능력’이라고 그의 책에 쓴 것처럼 이 시대의 교양은 점점 외적 표현의 의미에서 멀어져 가는 것 같다.

 책을 받은 이후, 한국학교 교사연수회를 통해 강원대 김풍기 교수의 강의를 접하게 되었다. 김 교수는 교사들에게 “교양은 판단하는 힘이며, 이 판단의 능력은 고전 읽기를 통해 나온다”고 했다.
이 말은 그 자리에 참석한 많은 교사들이 공감하며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교양이 생각하는 힘이고, 그것이 독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면 성급하고 분별력이 적은 이 세대는 어쩌면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필요한 정보들을 인터넷을 통해 빨리 빨리 찾아내고, 그 단편적인 지식들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에 깊이가 없다.

 몇 년 전, 한 개그맨이 ‘니들끼리 질문하고 니들끼리 답하는 게 무슨 지식검색이냐?’고 했을 때 한참을 웃었지만 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많았다. 미국에 사는 많은 한국 부모들이 다음 세대를 걱정한다. 아이들이 한국말을 잊지 않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잊지 않도록 주말마다 한국학교를 보낸다. 방학을 제외하고 나면 평균 1년에 서른 번 정도 한국학교에 가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까? 외모만 한국인이고 사고는 전혀 다른 사람, 외모는 서양인인데 먹고, 자고, 생각하는 것이 지극히 한국적인 사람 둘을 놓고 우리는 누구를 한국인이라고 할 것인가? 민족의 경계는 다양한 인종과의 결혼을 통해 점점 무너져간다. 외모만을 놓고 민족성을 논하는 시대는 가고 있다.

 교양있는 한국인, 그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 또한 독서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콜로라도에서 한국 책을 접할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우리 큰 애가 어렸을 때, 한 달 정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머문 적이 있었다. 지역 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도서관 한 켠에 자리잡은 한국 책들의 양에 깜짝 놀랐다. 대부분 한인들의 기증으로 이루어졌다는데 2/3 이상이 아동용 도서였지만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밀집해 있었다. 거기에도 다양한 인종들이 살고 있을텐데, 이런 아이디어를 내고 실천한 사람들이 문득 고맙게 느껴졌다.

 콜로라도에도 자유롭게 한국 책을 접하고, 한국적 문화를 이해하고 뿌리를 알아 갈 수 있도록 도서에 대한 나눔들이 더 풍성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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