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린의 행복찾기

나는 다람쥐를 참 잘 잡는다. 다람쥐 덫에다 미끼만 던져 넣으면 짧으면 10분, 길면 수 시간 안에 다람쥐 한 마리가 뚝딱 잡힌다. 미끼는 리츠 크래커에 땅콩 버터를 발라서 쓰는데, 이것만 있으면 완전 잘 잡힌다. 그래서 남편은 나를 ‘다람쥐 말을 하는 사람(Squirrel Whisperer)’이라고 부르며 놀리곤 한다.

그런데 문제는 다람쥐를 잡고 나서이다. 다람쥐가 내가 애써 가꾸어놓은 농작물과 과일 나무에 피해를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생명이다 보니 죽이기가 뭣하다.
 그렇다고 기껏 잡아놓은 것을 또 놓아주자니 그렇고 해서, 이래저래 다람쥐를 생포하고 나면 고민이 커진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다람쥐를 멀리멀리 가서 놓아주기로 했다. 남편은 공항에서 일을 하는데, 그래서 우리 집에서 편도로 20마일 거리에 있는 공항 가는 길에 넓디 넓은 초원에다 다람쥐를 풀어준다. 부디 돌아오지 말기를 기원하며 말이다.

 혹시나 다람쥐가 그 먼 길을 달려 돌아오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다람쥐 꼬리 부분에다 흰색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려서 몇 번 놓아준 적이 있는데, 아직까지 우리 동네에서 흰색 스프레이 페인트가 묻은 다람쥐를 본 적이 없는 걸 보면 저 넓은 초원에서 아직 잘 뛰어 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며칠 전의 일이다. 그날은 좀 추웠다. 다람쥐 두 마리가 뒷마당에서 또 시끄럽게 꽥꽥거리며 돌아다니길래 다시 덫을 설치했다. 과연 얼마 되지 않아 다람쥐 한 마리가 잡혔다. 그런데 남편이 다람쥐를 차에 태워 회사에 가는 것을 깜빡 하고 그냥 가버렸다. 

 아이들을 학교에서 데리고 와서 뒷마당을 보니 다람쥐가 아직도 다람쥐 덫 안에서 미친 듯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배가 고팠는지 미끼는 이미 흔적도 없이 먹어 치운 상태였다.
 아이들을 피아노 학원에 데리고 갔다가 어둑할 때 다시 집에 돌아왔는데, 갑자기 다람쥐 생각이 났다. 날씨가 추워서 다람쥐가 좀 걱정이 되었다. 나가서 이불이라도 좀 덮어주고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덫 위에 홑이불을 덮어 찬 바람이라도 막아주고, 내일 아침 일찍 공항 가는 길까지는 좀 그렇고 좀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놓아주고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너무 귀찮았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니 다람쥐는 털이 따뜻하니 그냥 하룻밤 정도는 어떻게 견디겠지, 싶었다. 그래서 그냥 자버렸다. 다음날 아침 일찍 다람쥐 생각이 나서 뒷마당을 내다보니 다람쥐가 아직도 살아있었는데, 움직임이 좀 둔했다. 어떻게 보면 잠이 좀 덜 깬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죽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일어나자마자 아이를 수학 학원에 데려다 주는 길에 다람쥐를 좀 놓아주고 오라고 채근을 했다. 남편은 투덜거리며 다람쥐 덫을 들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1시간 후 돌아온 남편의 얼굴 표정이 좋지 않았다. 수학 학원 근처의 빈 공터에다 다람쥐를 풀어주려고 덫을 꺼냈는데, 다람쥐가 이미 죽어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다람쥐 좀 잡지 마라고 짜증을 낸다. 죽은 다람쥐 처리하는 것이 찜찜했던 모양이다. 다람쥐 잘 잡는다고 좋아라 하던 때는 언제고 이제는 다람쥐를 잡지 말라니… 어이가 없기도 했다.

 그런데 아침에 본 굼뜬 행동을 하던 다람쥐의 모습이 계속 눈앞에 어른거렸다. 내가 괜한 생목숨 하나를 끊은 것 같아서 정말 마음이 안 좋았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목숨이 어디 있겠는가. 옛날 스님들은 개미 한 마리 밟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땅을 보며 걸어 다녔다는데, 하물며 다람쥐 같은 큰 동물이 나의 불찰로 인해 죽어 버렸다니… 정말 다람쥐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이 지면을 빌려 그 다람쥐에게 꼭 사과를 하고 싶다.
 “우리 집 뒷마당에서 생포돼 죽은 다람쥐야, 정말 미안하다. 다음에 네가 다시 다람쥐로 환생해 내 덫에 또 걸린다면 그때는 꼭 이불 덮어줄게. 그리고 다람쥐 천국에서 따뜻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 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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