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

오랜만에 아이들을 데리고 덴버자연과학사 박물관에 갔다가 작년에 큰 아이와 같은 반이었던 줄리앤을 우연히 만났다. 중국에서 입양된 줄리앤은 외동딸로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운 좋은 입양아 중 한 명이다.

 줄리앤과 함께 온 줄리앤의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다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줄리앤의 엄마가 암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줄리앤의 엄마는 쾌활하고 성격이 좋아 나도 참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유방암을 앓았다가 완쾌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암이 전신에 퍼져 이제는 가망이 없어 현재 집에서 호스피스 케어를 받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앞으로 1-2주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는데, 극심한 통증 때문에 하루의 대부분을 약에 취해 자고 있는 산송장이나 다름 없는 삶을 하루하루 살고 있다고 했다.

 지난 5월 말에 여름 방학을 시작하기 전, 줄리앤 엄마가 우리를 파티에 초대한 적이 있었다. 당시 한국을 갈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 미안하다며 초대를 거절했었는데, 그때 만약 갔었다면 건강한 줄리앤의 엄마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에 후회가 든다.

 학기를 마친 후 줄리앤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줄리앤을 볼 일이 없어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하지만 그 비극적인 소식을 듣는 순간 줄리앤 엄마와의 시간들이 파도처럼 기억 저편에서 밀려온다. 전문직을 가지고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잘 웃고 온갖 명목으로 재미있는 파티를 열어 사람들을 초대하기 좋아하던 유쾌한 사람이었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건강한 모습으로 나와 농담을 나누던 사람이 이제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인간이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 어제 멀쩡하던 사람이 교통사고로 한 순간에 운명을 달리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매일매일 운동을 빠지지 않았던 건강한 사람이 갑자기 불치병에 걸려 생사를 헤매는 일도 다반사이다.

 2010년이 어느덧 거의 저물어가고 있다. 불경기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힘든 한 해를 보냈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불평도 사치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카운트 다운을 하고 있는 하루 하루가 누구보다도 소중할 것이다.

 내가 덧없이 보낸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갖고 싶었던 하루였을 수도 있다. 천년만년 살 것 같지만, 하루를 기약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목숨이다. 다음날 아침 건강하게 눈을 뜨는 것이 얼마나 운이 좋은 것인지를 절실히 느껴야 한다.

 다가오는 2011년부터는 이렇게 저렇게 해야지, 하며 신년 계획을 세우지 말자. 바로 오늘, 지금부터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자.
 하루살이를 생각해보자. 그 하루살이에게 하루는 1분 1초가 소중한 삶일 것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마치 하루살이처럼 살아간다면 훗날 죽음이 다가올 때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루살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파란 하늘에 무심히 떠가는 구름 한 조각, 아침 이슬을 머금은 채 활짝 피어난 빨간 장미 한 송이가 경이로운 장면이 아닐까. 풀꽃 하나, 스쳐 지나가는 바람 한줄기도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소중하고 아름답지 않을까. 우리 모두가 하루살이의 눈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세상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 될 것이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루를 되짚어보자. 오늘 나는 하루살이의 삶을 살았을까. 내일 나에게 또 하루의 삶이 주어진다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하루살이처럼 치열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말이다.
<이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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