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 전화

한국에서 돌아오는 날 하필이면 우리가 비행기에 탑승하려는 순간에 폭발물에 관한 장난 전화가 공항으로 걸려왔다. 미국으로 출국하려던 항공기 3대가 폭발물 탐지를 위해 모든 수속이 정지 돼 버렸다. 그리곤 곧바로 탐색을 위한 팀들이 분주히 오갔고 모든 승객들은 그 자리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기다려야만 했다. 미국 쪽에서 요구하는 안전기준이 있었고 그 만한 전화를 받고 무시할 수도 없는 사정은 따로 또 있었다. 마침 G-20가 한국에서 일주일 후면 열리게 돼 있었던 사정이 그런 것이었다. 그런 전화가 아니어도 국제선을 이용해야 하는 이들은 보통 때보다 공항에 빨리 나간다. 그래서 공항에서 대기해야 하는 시간이 길기만 한데 그 놈의 전화 때문에 그 지루한 시간은 다시 길어지고 있었다.

  폭발물 탐지 같은 일은 공항에 상주하는 경찰에서 관할 한다고 했고 전문 팀이 따로 있다고 했던 것 같다. 여러 팀들이 쫓아 다니고 샅샅이 그 큰 비행기를 수색하는 절차가 다 끝나도록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억울함이기도 했다. 폭발물이 실려 있다는 제보를 받고 그냥 뜰 수도 없는 일이고 보면 그 비행기를 타야 하는 승객들 마음은 또 어떠했겠는가? 여러 시간을 보낸 후에 다시 탑승이 시작 되었다. 미리 검색대를 통과했지만 다시 짐과 몸을 수색하는 절차가 탑승 바로 직전에 이루어졌다. 서로 웃으면서 농담처럼 “이상 없는 것이냐?”고 묻고 “아무 이상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는 대답들이 오갔다. 그래도 분하고 불안한 심정들이 가득한 표정들은 다 어떡할 수 없었다.

게다가 샌프란시스코나 LA까지만 가는 승객이라면 몰라도 그 곳에서 다시 다른 비행기를 갈아 타야 하는 많은 승객들은 모두 그 갈아 타야 하는 비행기를 놓치게 돼버렸다. 덴버만해도 이미 너무 촉박한 40분이란 시간 여유밖에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도 그랬지만 서서히 그 장난전화를 했다는 인간에 대한 증오가 끓어 올랐다. 기다리던 동안도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들이 보다 큰 처벌이 있어야지 이게 뭔가 하는 불만이 제일 많았다. 장난 전화였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자 그것이 장난 전화였다고 확인되었다. 그것도 2명의 학생이었다고 했던 것 같다. 분한 김에 이젠 잘못 키운 부모를 어떻게 처벌해야 하나 하는 생각들을 다 해 보았을 것이다.

  흔히 사이버상에서 큰 말썽을 피운 사람을 잡고 보면 어린 학생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천연덕스럽게 그냥 장난으로 해 본 건데 죄송하게 됐다고 고개를 떨구는 장면을 몇 번 본 것도 같다. 악성 댓글을 다는 누리꾼들 중 아주 많은 비율이 이런 초 중고교생이란 사실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만우절 날 거짓말 하는 기분 정도로 이 같은 일들을 저지르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무심코 연못에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고 가벼운 기분으로 저지른 장난에 남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다거나 결혼식에 신랑이 늦어 버리는 일이 벌어져 버리기도 한다. 아주 중요한 거래를 놓치거나 기회를 잃어버리게도 된다. 그러고도 누구에게 하소연 할 길도 없다. 얼마나 분통 터지는 일이고 억울한 일이겠는가?

“우리 아이가 변했어요” 라는 프로가 있다. 거의 전부가 부모의 무지로 아이를 이상하게 키운 사례를 보여준다. 전문가를 만나기 전에 모든 부모는 아무 하자가 없는 줄로 아는 것을 보면 이만한 장난 전화가 얼마나 쉽게 가능할 것인지 수긍은 절로 간다. 무지는 인류의 적이란 말이 있다. 그러나 장난 전화랍시고 한다는 그 행동이 대개는 장난 이상의 난리를 피울 것이란 것을 알기에 시도되는 것이란 걸 간과하면 안 된다. 무지는 무지대로 다루어야 하지만 보통은 안 되는 걸 쉽게 용납해주는 것이 그런 장난을 키운다. 따끔함과 절대 안 되는 것은 아주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흔히 그 어릴 때를 놓쳐 한 평생 이상한 아이로 커나가는 것을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에서 이 무슨 하릴없는 기다림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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