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주 전만 해도 미국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는 이들을 혹시 코로나 감염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그로서리 스토어나 약국, 식당,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난 주말부터 워싱턴 DC와 주변 지역에서는 식료품을 사러 갈 때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면서도 자신은 쓰지 않겠다고 했지만, 정작 백악관이 있는 워싱턴 DC 시 당국은 공공장소에서의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 것이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정상들까지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고 나섰고, 이곳 콜로라도 주 역시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을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어 마스크를 쓰고 싶어도 여태껏 눈치가 보여 떳떳하게 쓰지 못한 우리 한인들에게는 다소 위안이 된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서부터 가끔 생활 속에서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한다. 지난 주말, 평소에 자주 가던 반찬 집을 오랜만에 찾았는데 일하는 분들이 필자의 얼굴을 금세 알아보지 못했다. 모두들 마스크를 쓰고 나오니 단골 손님이더라도 한참을 쳐다봐야 알아볼 수 있다며 겸연쩍어 했다. 마스크가 없어서 일회용 마스크를 일주일 넘게 사용하다보니 너덜너덜한 상태로 쓰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여성들이 립스틱은 구매하지 않고 아이새도우나 마스카라와 같은 눈화장 제품만 사게 된다는 것도 마스크를 쓰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또, 지난 주말 필자가 마트에서 고구마를 고르고 있었는데, 옆에서 함께 쇼핑을 하던 사람이 지인인 줄 한참 만에 알아차리고는 서로 웃기도 했다.

      어느 시인이 마스크품절 사태에 대해 쓴 시의 대목 중 ‘너 때문에 답답한데 너 없으면 더 답답해’라는 문구가 확 닿는다. 이처럼 이제는 마스크 착용이 필수가 되었다. 외출 준비의 마지막 단계에서 목걸이와 귀걸이를 챙기듯이 말이다. 몇 달전만 해도 버스나 RTD 등 대중 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대부분이 마스크나 스카프를 착용하고 있다.  마스크 없이는 출입이 제한되는 공간도 많아졌다. 오히려 마스크를 챙기지 못하면 매너 없는 사람으로 취급된다. 한국에서는 외출의 목적과 의상에 따라 마스크의 색깔이나 소재까지 고른다고 한다. 입사 면접 시에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코로나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는 얼굴의 반이 가려진 상태에서 눈만 보고 상대방과 소통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할 판이다. 원래 마주 오는 사람을 잘 쳐다보지 않았지만, 마스크 착용한 후에는 오히려 사람을 더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겼다. 눈, 코, 입 등 얼굴 표정을 통해 사람을 만나던 때와 달리 눈빛만으로 상대의 연령대와 성향, 외모 등을 짐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말투와 걸음걸이 등으로 애초의 짐작이 별반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는 재미도 있다.

     얼굴 외에 의상이나 헤어스타일, 행동 등이 부차적으로 그 사람을 보여 주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상대방을 읽고 파악할 수 있다. 진실되게 사귀려면 그 사람의 눈을 보라고 말할 만큼 눈은 사람의 마음을 가장 잘 나타내며, 전체 인상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신체부위이다. 평소의 우리는 손과 발, 입 등 여러 신체기관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표현해왔다. 하지만 그 미묘한 모든 것을 한꺼번에 표현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눈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는 눈에서 하트가 뿅뿅 나오고, 미운 사람을 쳐다볼 때는 가시광선이 발사되는 것처럼 기분 좋으면 눈도 웃고, 슬프면 눈물을 흘리고, 흥미로우면 눈을 번뜩이고, 화가 나면 눈살을 찌푸리고, 미우면 눈을 흘기고, 놀라면 눈이 커진다. 이처럼 눈만 쳐다보고 있으면 상대의 감정과, 인성, 그리고 미묘한 갈등까지도 알아차릴 수 있다. 화려한 말기술로 상대방을 속이려 해도 눈만 자세히 보고 있으면 때로는 그 사람의 진위를 파악할 수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예방을 위해 착용하는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은 가려지지만 우리의 마음까지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각종 의학연구자료에 의하면 우울증이 있거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상대의 눈을 잘 쳐다보지 못한다고 한다. 반면에 행복한 사람일수록 상대의 눈을 적극적으로 쳐다보면서 이야기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코로나 팬데믹은 장기전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바깥 출입을 삼가하고 사람들 많은 곳은 피하고, 세상과 점점 고립되어 가는 듯한 우리의 일상이 답답하기도 하고 서글프기까지 하다. 그 일상에 마스크는 하나의 장벽처럼 우리들의 사이를 더 멀어지게 할 것 같다.  얼마전 한 엄마가 네 살 된 딸이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슬픈 얘기를 들려주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일상이 너무 그리워지는 시기이다. 하지만 마스크로도 가릴 수 없는 ‘눈’과 ‘눈’을 통해 우리는 행복 에너지를 여전히 나눌 수 있다. 이 사태를 이겨내기 위해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텨가고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해 따스한 눈빛을 전달해보자. 서로에게 행복 에너지를 뿜어주는 ‘눈의 대화’가 지금의 우울한 상황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얼마전 익명을 요구한 한 분이 한인 사회에 필요한 분들에게 전달해 달라며 주간 포커스에 일반 마스크 2천 장을 기부했다. 이에 주간 포커스는 마스크를 원하는 한인 교민들에게 월요일부터 선착순으로 마스크를 나누어주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지구촌이 아비규환인 지금, 이러한 훈훈한 정서가 있어 그나마 힘이 된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면 마스크를 쓰는 것도 고역이 될 것이다. 그 전에 이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며, 그때까지라도 서로에서 웃음과 희망을 나누는 눈의 대화를 계속 이어가길 바란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