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새해가 밝은지도 어느덧 2주가 지나가는 시점입니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적은 것처럼 ‘새해들이 경계 표시용 도랑에 의해 다른 해들과 분리되지 않듯’, 2019년 12월 31일과 2020년 1월 1일은 눈 덮인 개울 하나 살짝 건너는 것과 같았고,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린 2020년입니다. 새해가 되면 여러 가지 목표와 계획들로 빼곡히 작성하고는 하는데, 잘 지키고 계신지요? 2020년을 맞이하면서 세운 계획이 하나 있습니다.‘최선을 다해 힘을 빼는 것’ 입니다. 짧은 인생이지만, 뒤돌아보면, 제가 계획한 대로 인생을 흘러가지 않더군요. 최선을 다해 열심을 내었는데도, 생각지 못한 변수로 인하여 계획대로 되지 않고, 결과가 엉망이 된 일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에게 맡겨진 직책에 대해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열심을 낸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칭찬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열심의 결과가 좋은 결실을 맺을 때에는 제 마음이 기쁘지만, 의도한 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슬프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제 자신의 경우를 생각해볼 때, ‘겸손’하지 못해서인 듯 합니다. 무엇이든지 내가 노력한 대로 그 결과를 이루고 보상을 받는 것이 세상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잘되면 ‘내 탓’이고, 안되면 ‘남 탓’으로 돌리던 때도 많았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6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이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한 구절이 제 마음 가운데 맴돕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Under God’s mighty hand)’사실 목사로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보다는 때로는 저의 능력을 의지 할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수없이 반복하는 실수임에도‘열심히 하면 되겠지’라며, 저 자신을 채찍질할 때가 많았거든요. 분명한 것은 제 안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를 고민하던 중 예전에 읽었던 한 일화가 생각났습니다. 미국의 강철왕 카네기의 유년시절 이야기입니다.

     그는 참 유명한 부자였습니다.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카네기는 어렸을 때 매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가난함 속에 자랐습니다. 하루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시장에 갔을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시장 한구석에 빨간 앵두를 큰 바구니에 수북이 쌓아놓고 파는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어린 카네기는 그 앵두가 먹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너무 가난하니까 어머니께 앵두를 사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앵두가 너무 먹고 싶어서 그 자리에 서서 계속 앵두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앵두를 파는 할아버지가 카네기를 측은하게 생각하여,“얘야, 너 그렇게 앵두가 먹고 싶니? 그러면 한주먹 집어가거라”하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신바람이 났겠습니까? 그런데 어린 카네기는 자기 손으로 앵두를 집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입맛만 다시며 계속 앵두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앵두 파는 할아버지가 보고는 또다시 말합니다.“얘야, 망설이지 말고 가져갈 만큼 가져가. 괜찮아”그래도 카네기는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보다 못한 할아버지가 큰 손으로 앵두를 집어서 어린 카네기에게 주었습니다. 어린 카네기는 자기의 작은 손으로 다 받지 못해서 옷을 벌려서 받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어머니께서 시장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카네기에게 물었습니다.“얘, 카네기야. 너 왜 할아버지가 앵두를 집어가라고 했을 때, 안 집어가고 할아버지가 집어주니까 받았냐?” 어린 카네기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엄마, 내 손은 작지만, 할아버지 손은 크잖아요. ‘겸손’이라는 것은 자신보다 더 큰 존재를 신뢰하는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을 그리고 그분의 능력을 신뢰하기 때문에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이 ‘겸손’이라 믿습니다. 나보다 큰 존재, 하나님을 앞서가려고 하고, 하나님의 때를 무시하는 것이 얼마나 큰 교만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교만은 종종 ‘서두름’이라는 것을 낳게 되고,‘서두름’은 우리에게‘초조함’과‘불안함’을 가져다줍니다. 반면 나보다 크신 존재,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에게는 ‘여유’라는 것이 주어집니다. 어떠한 상황이 맞이하여도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처합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때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지요. 그러하기에 힘을 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베드로전서 5장 7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염려를 주께 맡기는 것은 기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즉 우리의 힘을 빼는 것이지요. 그리고 하나님께 힘쓰시라고 하는 겁니다. 체육을 전공했던 친한 친구와 운동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힘을 빼라’는 것입니다. ‘힘을 써야’하는게 운동인데, 왜 ‘힘을 빼라’는 것인지 물어보았더니, ‘힘을 빼야’만 ‘온전한 힘’이 나온다고 하더군요. 최선을 다해 힘을 뺍시다. 힘을‘쓰는 것’보다‘빼는 것’에 집중하는 2020년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온전한 일을 경험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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