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과도한 방위비 분담금을 요구했다. 지난달 24~25일 서울에서 열린 ‘제11차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이하 SMA)’에서 미국 측은 5조8천억원(50억달러)에 이르는 금액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기존 분담금 1조389억원의 5배나 되는 액수이다. 농담으로, 허풍으로 그칠 줄 알았던 일이 현실로 일어난 것이다. 협상이라는 게 기 싸움도 하고 허풍도 치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거라고 해도 이 정도면 정말 터무니없는 수준이 아닐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밝혀온 지는 오래되었다. 대선 후보시절 때부터 시작해, 올해도 공식일정이 있을 때마다 한국에 대한 불만을 달고 다녔다.

      트럼프 대통령은 실제로, “미국이 한국에 쓰는 비용은 연간 50억달러나 되는데, 한국은 5억달러만 지불하고 있다(2019년 2월),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들을 방어할 때 그들은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있으며, 그들은 비공개 회의에 들어가서는 미국의 어리석음을 비웃는다(2019년 5월), 미국은 한국을 82년째 도와주고 있지만 우리는 사실상 아무것도 얻지 못했고 한국은 더 많은 돈을 낼 것이다(2019년 8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직접 임대료를 받으러 다녔는데 뉴욕 임대 아파트에서 114달러를 받는 것보다 한국으로부터 10억 달러를 받는 것이 더 쉬웠다(2019년 8월)”라는 등의 한국을 향한 비난과 비아냥은 한두건이 아니었다.

     현실을 직시하자면, 그가 지향하는 미국 최우선주의에는 더이상 한국은 없어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현실을 부인하고 외면하고 싶어한다. 1991년 1차 SMA 체결 이후 분담금이 점진적으로 증가해 온 사실을 감안한다면 갑작스런 5배 증액 요구는 억지에 가깝다. 부동산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방식이 이번에도 적용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는 극단적 언사로 상대를 위축시킨 뒤 서서히 풀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하이볼(high ball)’전략을 구사해왔다. 이번에도 일단 강하게 가격을 올려놓고 협상을 시작하는 전략일 가능성이 높다. 주한 미군의 주둔비용은 1966년 체결된 한미주둔군 지위협정(SOFA)에 따라서 한국은 시설과 군사부지 등을 제공하고, 나머지 발생 비용은 미국이 부담하도록 돼 있다.

      그렇지만 미국은 1980년대 후반 무역적자가 누적되자 동맹국에 재정지원 확대를 요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부분은 SOFA협정에 위배되기 때문에 1991년 특별협정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을 체결하게 되었다. 즉 SMA는 시설과 구역을 제외한 주한미군 유지 경비를 모두 미국이 부담하도록 규정한 SOFA 제5조 1항에 대한 특별조치인 셈이다. 1991년 이후 한미는 1~5년 단위로 SMA를 체결해왔으며, 분담금 규모는 매년 점진적으로 올랐다. 1999년 IMF 위기로 인해 분담금이 축소 조정된 사례도 있지만, 6차(2005~2006)의 경우엔 6804억원, 7차(2007~2008)에선 7415억원, 8차(2009~2013)의 경우는 소비자물가지수를 반영해 8695억원까지 올랐고, 9차(2014~2018)는 9200억원, 올해 10차 SMA는 1조389억원에 이르렀다. 10차의 유효기간이 연말까지이다.

      11차 협상의 쟁점은 미군 작전 지원 항목 신설, 즉 ‘전략자산 전개비용’을 우리가 부담해야 하느냐이다. 현재 방위비 분담금은 기지건설비, 군수지원비, 한국인력 임금 등 3개 항목만 지원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런 원칙을 바꾸겠다는 얘기다. 전략자산이란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 항공모함 등 주로 핵을 이용한 무기들이라고 보면 본다. 이러한 전략자산을 움직이는 비용을 한국이 부담하라고 압박하는 것은, 주한미군이 한반도뿐만 아니라 태평양 지역까지 넘나드는 미군 주둔비용 전체를 한국 정부에서 부담하라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기존 SOFA협정 내용에 위배되는 사안이며, 말 그대로 불법이다. SOFA협정에서 명시하고 있듯이 미국군대의 유지에 따르는 모든 경비는 미국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왜 이런 억지에 가까운 요구를 하는 걸까. 두가지 이유가 거론된다. 첫번째는 오래된 동맹국과의 관계도 비즈니스 관계라는 인식이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한국을 본보기 삼아 일본, 독일 등과의 협상에서도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방위비 분담 비율은 세계에서 미군 주둔 규모가 가장 큰 3대 국가인 일본 50%, 한국 40%, 독일 18%이다. 우리와의 협상에서 우위를 얻은 뒤 이를 근거로 다시 독일을 압박한다는 전략일 수 있다. 현재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시켜주지 않는 경우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주한미군이 없으면 대한민국이 금새 망할 것처럼 외쳐댔던 시대는 지났다.

      외국 전문가들도 한국은 6개월 이내에 핵무기를 만들 능력을 구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주한미군을 축소 및 철수한다면 중국과의 패권경쟁에서도 불리하게 된다. 그러니 지금은 미국도 한반도 주둔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 트럼프 측은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함께 한국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한 대응책으로 지소미아 종료를 선택한 것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하면서 한국에만 연장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요구들은 한국 국민들에게 반미 감정만 확산시킬 뿐이다. SMA는 정부 간 합의가 되더라도 우리 측에선 국회의 비준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물론 협상에서 우리가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줄 가능성은 0%에 가깝다.

       그러나 보다 냉정하고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뉴욕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가진 한미 정상회담에서 지난 10년간 미국산 무기 구매 현황과 앞으로 3년간의 무기 구매 계획을 언급하는 등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앞두고 미국을 다독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트럼프는 취임 이후 북한바라기만 해왔던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사일을 쏘아 올린 북한 김정은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미국의 국방예산에 무임승차해 부당한 이익을 누려 온 파렴치한 국가로 만들어 버렸다. 한반도 평화를 지키기 위해 조성된 방위 분담금이, 오히려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전년대비 5배에 이르는 미국측 요구는 협상이 아닌 협박이며, 분담이 아닌 전담 수준이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