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반장'부터 '제1공화국', '땅', '간난이'까지 1980~1990년대 사람들을 TV 앞으로 끌어모은 '스타 PD' 1세대 고석만 PD는 최근 출간한 '나는 드라마로 시대를 기록했다'에서 이같이 밝혔다. 민주주의가 억압당하던 시대에 드라마로 사회화 함께 호흡한 고 PD는 '공영방송의 책무는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다'라는 독일 헌법재판소 판결문을 마음속에 새기고 드라마를 사회의 민낯을 비추는 거울로 사용하고자 했다고 한다.
책 내용은 숱한 억압과 중단의 역사로 점철됐다. 고 PD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제작 중단과 조기종영, 대본 사전 검열, 석연찮은 기획 무산 등 굴욕과 고난을 거치면서도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추며 시대를 울리는 일을 계속했다. 당대의 땅 투기 문제를 다루며 한국사회 발전의 어두운 면을 조명한 드라마 '땅'은 첫 회가 방영되자마자 드라마 때문에 청와대 비상대책회의가 소집되는 역사를 남긴다. 또 5·16 쿠데타를 TV 속에 재현하자마자 외압에 의해 조기 종영을 맞았다.
이 밖에도 최초의 정치드라마 '제1공화국'을 만들면서는 북한 정치의 시작을 다뤘다는 이유로 안전기획부에 끌려가 고초를 당했고, 당대 재벌을 소환한 '야망의 25시'는 정경유착의 힘으로 조기 종영당했다. 소설 '아리랑' 주인공 김산 일대기를 드라마로 담아내고자 한 시도는 기획 단계서 좌절됐다. 그러나 숱하게 정을 맞는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모난 돌로 살 수 있던 힘으로 고 PD는 자신과 늘 함께한 또 한 명의 모난 돌 김기팔 작가 덕분이라고 꼽는다. 책에는 저자가 드라마 PD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도 담겼다. 고향 전주의 모든 영화관을 돌아다닌 '할리우드 키즈'가 MBC에 입사해 열정을 불사른 시절, 긴 호흡 작품들 사이사이 중견 PD로서 연출한 특집극들에 대한 단상, 프리랜서 시절과 드라마 PD 이후의 삶 등이 다채롭게 소개됐다.
저자는 MBC를 나온 후 프리랜서를 거쳐 EBS 사장에 취임해 EBS국제다큐영화제 등의 기획을 성공시킨 이력도 있다. 책은 저자의 최근 활동 중 하나인 여수엑스포 총감독 시절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그는 2019년 현재, 대한민국의 문화콘텐츠산업이 어느 때보다도 높은 수준에 올라와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우리 삶과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드라마가 없다"는 일침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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