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20조 풀어라” &“금융 개혁을”

     “삼성이 20조원만 풀면 200만 명한테 1000만원씩을 더 줄 수 있다”고 말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집권여당의 원내사령탑이 “반시장적인 분배론을 주장했다”는 게 비판의 요지였다. 그런데 최근 민주당에선 “홍 원내대표 발언의 진의는 다른 데 있었다”는 해명이 나온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홍 원내대표는 대기업들이 사내유보금을 풀어야 우리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홍 원내대표는 논란이 일자 다음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몇몇 재벌에 갇혀 있는 자본을 가계로, 국민경제의 선순환 구조로 흘러가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이 그렇게 잘못된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적었다.

    이처럼 최근 여권은 대기업의 사내유보금 활용 방안을 고민하는 모습을 자주 드러내고 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현재 현금을 1조원 이상 보유한 기업은 47곳에 달한다. 삼성전자가 32조3038억원으로 가장 많고, 뒤이어 하나금융지주(9조9764억원), 현대자동차(8조3930억원) 등 순이었다.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운동본부’ 등이 지난해 말 재무제표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3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은 883조원에 달한다. 우리나라 2년 치 예산(2018년 428조8339억원)을 넘어서는 규모다. 대기업이 많은 돈을 쌓아놓고도 투자를 안 하니, 성장의 과실이 경제 전체로 퍼지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여권의 시각이다.

    금융개혁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슷한 맥락이다. 8·25 민주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김진표 의원은 3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융자에서 투자로의 금융개혁을 이뤄야만 우리 경제가 다시 활력을 회복할 수 있다. 당 대표가 되면 당이 주도해서 금융개혁을 빨리 추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대기업 사내유보금과 금융개혁이 어떻게 연결될까. 김 의원은 지난달 23일 언론 인터뷰에서 “대기업 지주사가 벤처캐피털을 자회사로 둘 수 있도록 현행 금융·산업자본 분리규정에 예외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해 대기업의 돈이 신생 기업에 투자되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27일 주재하려다 준비 미흡을 이유로 취소된 제2차 규제혁신 점검 회의에서 다루려 했던 인터넷 전문은행 관련 규제 완화도 이런 흐름과 맥이 닿아 있다.

     정치권에선 지난달 30일 도입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가 대기업에 자금을 풀라고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민주당 의원은 “최근 움직임을 보면 정부가 금융개혁에 중점을 두는 것 같다”며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이 흐르게 하고 벤처기업을 인수합병(M&A) 하게 하려면 금융개혁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목소리는 과거 정부에서도 나왔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7월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투자를 끌어내기 위해 사내유보금 과세 방안을 거론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7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삼성전자가 사상 최고 이익을 냈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가슴이 아팠다”며 “이를 보고 (삼성전자가 서민과) 더불어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계는 이 같은 정치권의 목소리에 불편한 반응을 보인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사내유보금은 토지·건물·생산설비 등까지 다 포함하기 때문에 그중에서 현금성 자산은 대개 20~30% 정도에 불과하다”며 “기업 입장에선 위기 상황에 대비해 현금성 자산 등을 확보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무작정 기업보고 돈을 풀라는 식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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