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명 재판 … 선고된 형량만 125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가 나오면서 2016년 말부터 1년 넘게 이어진 국정 농단 사건도 사실상 일단락됐다. 관련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사람만 박 전 대통령을 포함해 51명이다. 그중 2명을 빼고 대부분 유죄를 선고받았다. 4명은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들의 혐의는 크게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강요 ▲뇌물 공여 및 수수 ▲청와대 문건 유출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배포 ▲이화여대 부정 입학 등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제외하면 상당수가 최순실씨 모녀의 범죄와 관련돼 있다. 최씨에게 뇌물을 주거나, 최씨 딸 정유라씨의 이대 부정 입학에 연루된 사람들이 많다. 기소된 51명 중 1심 기준으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 생활을 한 사람이 절반이 넘는 27명이다. 징역형을 받았지만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는 12명, 벌금형이 6명, 무죄가 2명이다. 징역형을 받은 39명의 형량을 더하면 125년에 달한다. 이 중 박 전 대통령(24년)과 최씨의 선고 형량(23년)이 전체의 38%에 육박한다. 최씨는 국정 농단 사건으로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최씨는 앞서 별도로 기소된 딸 정유라씨의 이대 부정 입학 사건에선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으로 박근혜 정권의 비서실장, 청와대 수석, 장관, 비서관 등이 줄줄이 사법 처리됐다. 한 정권에 있던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싹쓸이하듯 수사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일각에선 “가혹한 수사”란 말도 나왔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구속된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수석은 2심에서 각각 징역 4년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조 전 수석은 1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됐지만, 항소심에서 실형이 나와 다시 수감됐다. 우병우 전민정수석은 최씨의 국정 농단을 묵인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 출연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그의 형량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 다음으로 무겁다. 청와대 문건 유출에 관여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1심 징역 24년, 벌금 180억

법원, 18개 혐의 중 16개 유죄 선고
법원이 6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4년의 중형(重刑)을 선고했다. 작년 4월 삼성에서 433억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 등 18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지 354일 만이다. 징역 24년은 국정 농단 관련 사건으로 재판을 받은 이들 중에 가장 높은 형량이다. 최순실씨는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는 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18개 혐의 가운데 16개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24년과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씨와 공모해 삼성과 롯데·SK로부터 592억원대 뇌물을 받거나 요구한 혐의,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 774억원을 강제 모금한 혐의 등 18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박 전 대통령은 수사와 재판에서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재단 출연금 모금 혐의 및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지시 혐의 등을 유죄로 판단했다. 다만 검찰이 제시한 삼성 뇌물수수액 433억원 중에선 승마 지원금 명목으로 최씨가 받은 72억9000만원에 대해서만 유죄로 판단했다. 삼성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낸 후원금 16억2800만원과 미르·K스포츠 재단에 낸 출연금 204억원은 뇌물이 아니라며 무죄로 판단했다. 검찰이 주장한 부정한 청탁의 대상인 삼성의 경영권 승계 작업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국정 농단 사태의 주된 책임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과 지위를 사인(私人)에게 나눠준 박 전 대통령과 이를 이용해 국정을 농단하고 사익을 추구한 최씨에게 있다”고 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은 최씨에게 속았다거나 자신과 무관하게 비서관들이 수행한 일이라며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고 책임을 주변에 전가했다”고 했다. 이날 박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보수단체 집회,“살인도 안했는데 24년 형이 말이 되나”

    7일 서울 도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1심 선고를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다. ‘천만인무죄석방운동본부’는 이날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 무효, 석방 촉구 집회’를 개최했다. 참석자들은 전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징역 24년, 벌금 180억원’ 판결에 “직접 돈을 받은 것도 없는데, 살인죄보다 형이 무거운 건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3000여명(경찰 추산)의 참석자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서울역광장을 가득 채웠다. 이들은 ‘탄핵 무효’ 문구가 적힌 띠를 이마에 두르고 ‘박근혜 대통령이 옳았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흔들었다. 박 전 대통령 형량이 높게 나온 것은 고위 공무원의 뇌물 수수 범죄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경향 때문이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수수액이 1억원 이상이면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국민 중에선 이번 판결 결과를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 참석자는 “박 전 대통령도 최순실한테 속은 것”이라며 “실제 뇌물을 받은 최순실(1심 징역 20년)보다 더 높은 형량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벌금 180억원을 못 내면 3년 더 노역을 해야 한다”며 “뇌물 받은 것도 없는데 그 돈을 어떻게 내느냐”고 했다.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박 전 대통령의 재산은 77억여원이다. 박 전 대통령 변론을 맡았던 도태우 변호사는 1심 판결 직후 소셜 미디어에 ‘개인적으로 이득을 취한 것이 없는데 뇌물죄라니 어불성설’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번 판결에 대해 법조계에서도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법무법인 하나 강신업 변호사는 “어느 재판이나 여론의 영향을 받지만 이번 재판부는 특히 촛불 민심 때문에 과거보다 엄격하게 다뤄 형량을 높인 측면이 있다”고 했다. 반면 법무법인 지금 김유돈 대표변호사는 “일반인이 보기엔 형량이 많이 나온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뇌물 액수도 적지 않은 데다 다양한 범죄가 적용돼 있어 형량이 높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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