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늘 자신에게 세 가지 질문을 하면서 살았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마지막 질문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그의 인생의 원리였다. 그는 만년에 “세 가지 질문”이라는 짧은 책을 썼다. 바로 그의 평생 삶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황제가 신하들에게 이 세 가지 질문을 한다. 하지만 만족스런 답을 얻지 못한 황제는 평복을 입고 산 속의 은자를 찾아간다. 그러나 그에게서도 역시 해답을 얻지를 못한다. 대신 그 은자가 힘들게 일하는 것을 보고는 그를 도와 밭을 갈게 되었다. 그 때 위험에 처한 사람의 비명소리를 듣게 된다. 황제는 즉시로 달려가 그를 위험으로부터 건져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사람은 황제 자신을 죽이려던 자객이었다. 산 속에서 무예를 닦으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사람이다. 황제는 결국 그의 목숨을 살려준 대가로 자기도 위험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이 일을 통해 황제는 자연스레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얻게 된다.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이 순간이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나중에 좋은 날이 오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이다. 지금 이 순간을 선용해야 한다. 내가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섬길 사람이 나중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그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인 것이다. 인생의 만족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오늘 여기에 있다.  오늘 여기를 놓치는 사람은 멀고 먼 길을 결국은 돌아오는 수고 밖에는 남는 것이 없게 될 것이다.

    몇 년 전 테레사 수녀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적이 있었다. 그 분의 유해를 두고 알바니아와 인도가 소유권 논쟁을 벌였다. 알바니아 정부는 테레사 수녀가 알바니아 사람이기 때문에, 인도 정부는 테레사 수녀가 70년 동안 켈커타의 빈민들을 위해 헌신했기 때문에 서로 자신들이 유해를 안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테레사의 유해를 놓고 이런 논쟁을 벌였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가 남긴 사랑의 흔적이 그만큼 깊고 넓기 때문이다. 흔적은 사람의 가슴에 새겨지는 법이다. 가슴에 새겨진 사랑의 흔적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가슴에 새겨지는 사랑의 흔적들을 남기려면 세 가지 자세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삼가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함부로 하지 않는다. 남의 자녀들을 가지고 뭐하고 하기가 어렵다. 그 자녀가 잘하든 못하든 부모에게는 가장 소중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지난 1000년간 가장 위대했던 인물을 선정한 적이 있다. 그때 1위로 선정된 인물이 몽골의 징기스칸이다. 세계를 지배했던 징기스칸이 가장 존중하고 떠받든 사람은 어머니가 유일했다. 어머니가 하는 말이라면 무엇이든 순종했다. 세상에서 아무 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징기스칸의 어머니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일이 하나 있었다. 전쟁에서 일찍 남편을 잃고 아무 자식도 없이 혼자 살아가는 딸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그 누구도 징기스칸의 누이에게 함부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타까운 마음으로 같이 존중해 주었다.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이렇게 소중히 여겨야 한다. 사랑하는 마음의 가장 큰 표현은 존중히 여기는 것이다. 깊이 생각해서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런 마음의 태도가 사랑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두 번째는 땀을 흘리는 것이다. 달리기를 처음에 시작하면 곧바로 땀이 나는 것이 아니다. 땀도 나기 전에 힘들어서 그만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서 중단하면 달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단계를 뛰어 넘어야 한다. 그때 이마에 땀이 나기 시작할 것이고 달리기가 훨씬 수월해 진다. 서로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마음이 맞을 때는 금방 친해진다. 다른 사람들이 시샘을 낼 정도로 가깝게 지낸다. 하지만 관계에 어려움이 찾아온다.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서로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사이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진다. 관계가 금방 소원해 진다. 하지만 그 순간을 이겨야 한다. 그때 참을 줄 알아야 한다. 차이는 그때부터 생기는 것이다. 마라톤 선수는 이제는 더 이상 뛸 수 없다고 느낄 때 두 번째 숨을 쉰다고 한다.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시작한다는 뜻이다. 아트 링클레터는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받는 급여보다 조금만 더 일하라. 남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것보다 조금 더 많이 주라. 그리고 조금만 더 열심히 일하라.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하라. 그리고 건강에 대해, 가족에 대해, 친구들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조금 더 감사하라.” 지금 우리가 하는 것보다 조금만 더 수고해 보라. 기도도 조금 더, 봉사도 조금 더, 감사도 조금 더, 사랑도 조금 더해 보라. 얼굴에 땀이 흐를 것이다. 그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사랑의 흔적이 남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 사랑의 흔적을 남게 하는 자세는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월리엄 부스가 영국에서 구세군 교회를 창설을 하면서 활발하게 선교 활동을 하던 때였다. 미국의 빈민가에 구세군 선교사를 파송했다. 몇 년이 지나도 회심자를 한 사람도 얻지를 못했다. 선교사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월리엄 부스에게 선교보고를 했다. “이곳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회심자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이제 그만 철수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 때 월리엄 부스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복음을 전하려고 너무 애쓰지 마시오. 회심자를 억지로 얻으려고 하지 마시오. 그저 그 영혼을 위해 눈물을 흘리시오.” 내가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진정 사랑하는 친구가 될 것이다. 교회를 위해 눈물로 기도할 수 있다면 그냥 다니는 교회가 되지 않는다. 내 가슴에 새겨진 교회가 된다. 먼 훗날 만날 사람이 친구가 아니다. 내가 다음에 만날 공동체가 내가 사랑할 사람들이 아니다. 나중에 만날 이상적인 교회가 내 교회가 아니다. 지금을 사랑해야 한다. 지금 교회, 지금 이웃들을 존중히 여겨야 한다. 그들을 위해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 가슴에 새겨지는 흔적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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