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에서 세 차례 연주회 성황리에 마쳐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히는 사라 장(한국명 장영주)이 콜로라도를 방문해 3월 12일부터 세 차례 공연을 가졌다. 비버 크릭의 빌라 퍼포먼스 아트 센터(Vilar Performing Arts Center Beaver Creek)를 시작으로 13일 덴버의 뉴맨 센터(Newman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에 이어 15일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챔프만 파운데이션 리사이틀 홀(Chapman Foundations Recital Hall)에서 공연을 마쳤다.  사라 장은 세 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서, 4살에 바이올린을 처음 배우기 시작해 6살에 줄리어드에 합격하고, 8세 때는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데뷔한 데 이어, 10세 때는 EMI 클래식스 레이블로 데뷔 앨범을 녹음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연히 그녀의 이름 앞에는 신동,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을 수 없고, 세계적인 거장들과의 협연 경력 또한 눈이 부실 정도이며, 연간 1백 회 이상 전 세계를 누비며 연주회를 가질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거대한’ 음악가가 콜로라도의 한국 교민들을 위해 금쪽 같은 시간을 할애해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전화기를 타고 울려 나오는 사라 장의 음성은 밝고, 경쾌하고, 행복하고, 친근했다. 마치 아주 오랜 만에 친한 친구를 만나 반갑게 수다를 떠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격의 없이 모든 질문에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기자가 미처 묻지도 않았는데 사라 장은 “콜로라도 너무 좋아요, 파라다이스 같아요!”라며 말문을 열었다. 콜로라도로 오기 바로 전에 뉴욕에서 연주회를 열었는데 눈이 너무너무 많이 와서 고생스러웠단다. 그러다 비버 크릭(Beaver Creek)과 덴버에서 만난 따뜻한 날씨와 눈부신 햇살에 아주 살 것 같다고 했다. 또한 유년시절 아스펜 뮤직 페스티벌에 참가하느라 콜로라도를 자주 찾았었기 때문에 추억도 많고 친근한 곳이라고 했다. 콜로라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무척 식상하고 형식적인 질문을 이렇게 특별하게 풀어가는 사라 장의 친화력이 놀라웠다. 타인을 대하는 그녀의 이런 열린 에너지가 무대 위에서도 청중들과 교감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게 하는 것은 아닐까. 사라 장은 도시마다, 홀마다 청중들의 에너지가 굉장히 다름을 느낀다고 했다. 각 공연장마다 무대와 객석의 거리나 구조가 다르고 음향 조건도 다른데, 아무래도 객석과 무대가 가까이 있을 때가 훨씬 더 청중을 가까이에서 느끼면서 연주할 수 있어 더욱 선호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라 장은 8살 데뷔 때부터 지켜보기 시작한 분들이 발매한 음반을 다 가지고 있을 정도로 함께 하는 팬들의 높은 충성도에 대해서도 감동과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때로는 브람스, 베토벤 등의 무거운 곡을 연주하고, 또 때로는 서정적이고 웅장한 연주를 들려주기도 하기에 그녀의 개인적인 취향을 궁금해 하자 단박에 “로맨틱한 것이 좋아요”라는 답변이 나왔다. 영화, 드라마 등등 로맨틱한 것들이 너무너무 좋다며 고조되는 그녀의 음성은 ‘사랑스러운 여인’ 그 자체였다.

    이런 세계적인 대가는 어떻게 개인적인 일상의 즐거움을 찾을까? 사라 장은 이번에도 서슴없이 애완견 치위(Chewie)가 그녀의 가장 큰 기쁨이라고 자랑하기 시작했다. 바이올린을 손에서 내려놓는 순간 강아지가 가장 중요할 정도라고 했다. 콜로라도로 오기 전 뉴욕 공연에는 치위를 데리고 갈 수 있었는데, 분장실에서나 리허설을 할 때 등등 치위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행복했다고 한다. 사라 장은 음악을 전공한 부모님의 특별한 교육을 받은 것으로도 유명한데 어린 시절 항상 뉴욕까지 자신을 위해 운전을 하시던 어머니의 열성적인 지원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절감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머니의 이러한 지원은 테니스를 한 사라 장의 동생에게로 이어졌고, 이런 헌신의 무게가 너무 커서 감히 따라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 가장 운이 좋았던 것은 사라 장 본인의 비전과 똑같은 매니지먼트 팀을 만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타고난 재능도 물론 필요하지만 이를 키울 수 있는 훌륭한 선생님들과 좋은 매니저를 통해서 끊임없이 지원받을 수 있었던 것이 큰 행운이라고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했던 점은 연주에만 몰입하지 않고 학교 생활을 비롯한 일상생활과 균형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준 매니지먼트 팀 덕분에 소진되지 않고 음악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재능이 두각을 나타내게 되면 전 세계에서 연주회 요청이 끊이지 않고 들어오게 되는데 자칫 이런 요청들에 끌려 다니다가 번아웃 되어버릴 수 있었음에도, 현명한 매지먼트팀을 통해 음악과 일상 생활의 중심을 잡을 수 있었던 점이 가장 중요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최근 한국 평창에서 열린 올림픽도 너무 멋있었다며 평양에서 가졌던 연주회도 회상했다. 막상 북한에서는 정해진 사람과만 말해야 하고, 정해진 호텔과 레스토랑 안에만 있었어야 했지만, 그래도 한 민족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평양 공연에 대해 조부모님들께서 너무너무 감격하셨었다고 전했다.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다는 한국 이름 ‘영주’의 ‘우주에서 영원히 빛나리라’라는 의미가 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여운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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