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신자인 아버지와 아들이 교회에 가서 한참 기도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그러자 아들이 따라서 눈을 감으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할아버지~” 그러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속삭이며 말했습니다. “너도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는 거야” 아들이 이해가 안간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습니다. “아니 그럼 아빠한테도 아버지고 나한테도 아버지란 말이야?” 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그래 그런거야 우리 아들 똑똑하구나! 알겠지?” 그러자 아들이 마지못해 입을 열였습니다. “ 알았어.... 형...”

           손주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시선과 사랑은 동서고금을 넘어 조건없이 베푸는 사랑의 대표적인 마음일 겁니다. 이번에 손주를 안아보면서 그 말이 정말 가슴으로 이해가 되어지더군요. 그래서 한편으론 이제부터 하나님을 저도 아버지보다 더한 사랑의 가슴이 느껴지는 하나님 할아버지라고 부를까하는 생각을 가져 본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표현을 좀 더 묵상하다보면 역시 하나님은 할아버지가 아닌 하나님 아버지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할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어떻게 보면 아버지의 사랑을 뛰어넘어 보이는 듯 하지만 그것이 아이를 위한 가장 좋은 것인가하는 질문에는 문제가 느껴집니다. 할아버지는 손주가 무엇을 해도 다 받아 줍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손주가 할아버지 수염을 잡고 흔들어도 상투를 잡고 놀아도 괜찮을 정도의 애정을 보여 주었던 것이 할아버지의 사랑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주가 그렇게 사랑스런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장래에 대해 걱정하고 책임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일은 아이의 아빠엄마가 맡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부모의 아이에 대한 사랑은 조금 다릅니다. 무조건 한정 없이 응석을 받아주지 않습니다. 아이가 홀로 설수 있도록 사랑과 함께 양육을 위한 훈련과 교육과 심지어는 징계와 책망을 통해서 한 사람의 건강한 성인으로 안내해 줍니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12:8)  사랑의 하나님만 믿으려 드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하나님 할아버지로 바꾸는 셈입니다. 혹시 우리가 이미 하나님 아버지보다는 하나님 할아버지가 더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내가 원하는 것만 얻기위해 고집피우고 응석부리는 손주처럼 떼쓰는 기도안에 이미 우리는 하나님 할아버지를 찾고 있습니다. 손주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렇게 불러 보려고 했던 제 생각이 짧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부모님이 부르셨던 하나님 아버지를 저도 부르고 제 딸아이들도 그렇게 부르고 제 손주들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신앙고백은 그안에 담긴 놀라운 믿음의 비밀 때문에 계속 지켜가야할 외침입니다.

         귀천(歸天 : 하늘로 돌아간다는 뜻)
늦가을이지만 가을 풍경의 끝자락이라도 붙잡아 놓고 시라도 한수 써보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듭니다. 그리고 이때쯤이면 한 번 정도 불러 보고픈 가을 노래도 웅얼거려 봅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와 기타를 치며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노래를 불러 보기도 했습니다. 가을에 새겨진 많은 추억과 감정들을 다시 들춰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지난번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함께 서울에 있는 인사동거리를 잠시 들렸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아내는 전에 가본적이 있다면서 저를 한 작은 찻집으로 안내해 주었는데 그곳은 바로 이미 고인이 된 천상병 시인의 미망인인 그의 아내가 홀로 운영하는 작은 찻집이었습니다. 찻집에 들어서면서 맞이하는 풍경은 평생의 천상병 시인의 삶처럼 작지만 큰 우주가 담긴 듯 몇 가지 걸려있지 않지만 작은 소품과 사진들이 마치 그의 삶을 시처럼 읊어대듯 걸려있었습니다. 우리를 맞이해준 천 시인의 미망인인 주인아주머니는 작은 키에 아주 소박한 차림에서 느껴지듯 기이한 한 시인의 삶의 언저리에서 천 시인이 기댈 언덕으로, 때론 베고 누었던 무릎배게처럼 푸근한 인상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모과차를 시키고 찻집을 둘러볼 때 벽에 걸린 눈에 익은 시가 목판에 새겨 걸려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천 시인의 가장 대표적인 시인‘귀천’이었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향긋한 모과차를 한 모금 입에 담고 다시 그 시를 읽으면서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주님! 나도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주님앞에 서서 당신으로 인하여 제 삶이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싶어요” 오늘은 그때 중얼거렸던 독백을 떠올리며 그러려면 지금 난 무엇을 하여야 할까를 물으며 답을 찾다가 잠이 들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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