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발가락 19개 없지만 남은 엄지 하나에 감사”

         지난 22일 경남 진주종합경기장 암벽장에서 인공암벽을 오르며 밝게 웃고 있는 최강식 씨. 최 씨는 손가락을 잃어 생활이 불편하지 않으냐고 묻자 거리낌 없이 양손을 탁자에 올려 보이며 “장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사진 촬영에도 흔쾌히 응했다. “히말라야에서 손가락·발가락 19개를 잃었지만, 신이 엄지손가락 하나는 남겨줬어요. 이 엄지가 있어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아이들도 가르칩니다. 운동장에서는 아이들보다 잘 뛰죠. 장애나 좌절요? 죽다 살아서인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경남 진주동중학교 기간제 체육교사인 최강식(37) 씨. 그는 지난 2005년 1월 선배 박정헌(47) 씨와 함께 네팔 히말라야 촐라체(6440m) 북벽을 등정하고 하산하던 길에 폭 1m, 깊이 50m의 크레바스로 추락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그와 25m 길이의 자일로 연결돼 있던 박 씨는 위에서 필사적으로 버텼다. 추락하며 양쪽 다리가 골절돼 허공에 매달린 최 씨는 등강기를 이용해 양팔 힘으로 20여m를 올라왔다. 둘은 서로를 의지해 기다시피 하산했고, 사고 5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이 사고로 최 씨는 손가락 9개와 발가락 10개를 잃었고 박 씨도 손가락 8개와 발가락 2개를 절단해야 했다. 사고 후 만 12년이 지난 22일 최 씨를 경남 진주종합경기장 암벽장에서 만났다. 손을 내밀자 두툼한 점퍼 주머니에서 거리낌 없이 나온 그의 짧고 뭉텅한 손이 잡혔다. 따뜻했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조심스럽게 묻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밝은 목소리가 돌아왔다. “엄청나게 바쁘게 살았어요. 사고 후 재활한 뒤 복학해 졸업하고 특수교육 석사 논문 쓰고 결혼도 하고…. 지금은 중학교에서 체육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아이들과 함께 뛰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지나갑니다.”  최 씨는 사고 후 국내로 이송돼 손·발가락 절단과 분리 수술, 재활 등으로 8개월 넘게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듬해 경상대 체육교육과에 복학한 그는 공부에 매달렸고, 사학과를 복수 전공했다. 4학년 때는 총학생회장에 당선돼 학생들을 이끌며 학생회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탈퇴도 이끌었다고 한다.

         하지만 졸업 후 삶은 뜻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2008년부터 임용고시를 여러 차례 쳤지만 미끄러져 비정규직인 초등학교 스포츠강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뎌야 했다. 하지만 그게 인생 최대의 선물인 반려자를 만나는 계기가 됐다. 진주 동진초등학교에서 스포츠강사로 근무할 때 교사인 최송희(32) 씨를 만나 2011년 결혼에 골인했고, 딸(5)을 얻어 어엿한 가장이 됐다. “처가에 인사하러 가는데 손가락 발가락이 없어 많이 긴장했어요. 그런데 특전사 출신인 장인과 장모가 언론을 통해 사고 상황을 잘 알고 있어서인지 반갑게 맞아줬고 결혼도 반대하지 않았어요. 요즘엔 장인과 친구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그는 여러 학교를 옮겨 다니며 스포츠강사, 기간제 교사로 9년째 활동하면서 학교 육상부를 지역교육장배 대회에서 우승하게 하고, 지난해에는 전국 학교스포츠클럽 풋살대회에서 3위의 성적을 내는 등 체육교사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자신처럼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창원대 특수교육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석사학위도 땄다. “기간제이지만 학교에서 장애인 교사를 받아주기 쉽지 않은데 채용해줘 너무 고마워요. 특수학교에서 4년간 애들을 가르쳐 봤고 특수교육도 받았으니 몸 불편한 아이들을 좀 더 세심하게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예전만큼 산을 오를 순 없지만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2009년 킬리만자로 등반을 다녀왔고, 2013년에는 키르기스스탄 레닌피크(7134m) 원정대 부대장으로 참여했어요. 아이젠을 신고 오르며 발에서 피가 줄줄 흘렀지만 좋아서 올랐습니다.” 그도 사람인지라 가끔 일이 안 풀릴 때면 추락사고 꿈을 꾼다. 하지만 잠에서 깨면 사고를 생각할 틈도 없다. “지난해 학교에서 엘리트 축구부를 창단했는데 제가 전담하게 됐어요. 앞으로 성과를 내기 위해 더 바쁠 것 같아요. 아이들과 땀내며 뛰다 보면 학교에서 일하는 삶이 너무 즐겁고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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