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바인고교 총기난사 범인 어머니의 참회록

       총기를 난사해 교우들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10대 아들의 죽음을 세상에 얘기하는데 그녀에게는 17년이 필요했다. 1999년 콜로라도주 콜럼바인고교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2명 가운데 한 명인 딜런 클레볼드(당시 18세)의 어머니 수 클레볼드(68)의 이야기다. 사건 후 세상으로부터 은둔한 그녀가 최근 참회록 성격의 ‘어머니의 심판’(Mother’s Reckoning)을 펴내며 입을 열었다. 상처를 헤집는 얘기,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내용일 수도 있지만 4일 현재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다.

         이 사건은 1999년 4월 20일 단짝 친구이자 이 학교 12학년생이던 에릭 해리스와 클레볼드가 권총, 반자동소총, 사제폭탄으로 무장하고 학교에 난입해 무차별 사격을가한 뒤 자살한 미국의 대표적인 총기난사 사건이다.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이 숨졌고 24명이 다쳤다. 큰 문제가 없던 가정을 꾸려가던 클레볼드 부부에게는 그날 이후 ‘살인마의 부모’라는 낙인이 찍혔다. 사건 5일 후 아들을 화장하고 텅빈 집으로 돌아온 뒤 제일 먼저 한 것은 바깥에서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종이, 테이프, 압정으로 창문을 모조리 가린 일이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밀봉하고 난 후에야, 우리는 집안의 제일 뒷방에서 전등을 켤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범인의 어머니가 희생자의 유가족에게 보내는 글이지만, 동시에 클레볼드 부부와 큰 아들이 숨죽여 겪었던 고통스러운 시간의 기록이자, 사랑했던 둘째 아들에게 띄우는 편지이기도 하다. 그녀는 “세상은 딜런을 ‘괴물’이라고 했지만 나도 아이를 잃은 엄마”라면서 아들을 잃은 슬픔이 다른 부모와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사건 두 달여 후, 학교의 허락을 받아 총기난사가 발생했던 도서관을 처음 찾았을 때, 그녀는 바닥에 그려진 시신들의 위치 표시 가운데 아들의 신체와 비슷한 표시를 찾아내고 무릎을 꿇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던 것일까. 어린 시절의 딜런은 레고 블록을 좋아하던 평범한 꼬마였다. 중학교 때는 영재코스에 들어가 부모의 자랑이 됐다.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면 화를 많이 내곤 했지만,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는 별다른 문제를 몰랐다. 그러나 고교 때 컴퓨터에 빠졌고, 또래들이 여자친구들을 사귈 때 공범인 에릭과 ‘절친’이 되더니, 둘이서 함께 주차된 승용차에서 전자장비를 훔치다 경찰에 구속돼 고교 11학년 때 교정 과정을 거쳤다. 그래도 주변에 늘 친구가 많았고, 사건 며칠 전에는 고교 졸업파티도 했다.

         “죽기 한 달 전까지도 같이 팝콘을 나눠먹으며 영화를 봤다”는 그녀는 가족 관계에서 사랑이 부족했다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사건 후 스스로 아들의 죽음에 끊임없는 물음을 던진 그녀가 깨닫게 된 것은 자신은 전혀 몰랐던 ‘아들의 세계’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들이 술을 마시고, 친구와 무기를 사모았으며, 지독한 외로움과 절망 속에서 삶의 마감을 꿈꿨다는 것, 그리고 우울증에 빠져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고 했다. 사건 당일 아침, 등교하며 던진 “안녕(Bye)”라는 인사는 어감이 달랐다. “비웃음이랄까, 마치 누군가와 싸운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우리는 완전히, 그리고 치명적으로 아들이 겪는 고통의 깊이와 심각성을 가볍게 봤던 것 같다”고 깊은 회한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우울증과 뇌기능장애가 그런 사건의 결심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까지는 모르더라도, 우리는 폭력을 막는데 전념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들이 죽기 전 공범과 함께 찍은 동영상을 사건 6개월 후에야 봤다. 폭력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언어를 쓰면서 무기를 휘두르는 아들은 “자살을 생각하면 희망이 생긴다. 삶이 끝난 후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다다르니까. 정말로 죽고 싶다”는 일기도 남겼다. 그녀는 이제 “훈계하기보다는 딜런의 말을 더 들어주고, 내 생각을 말하기보다는 둘이 아무 말 없이 그냥 앉아있는게 좋았으며, 딜런을 설득하기보다는 그냥 그 아이의 기분을 알아줬어야 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딜런은 우울증의 징후들을 보였고, 우리가 그 신호의 의미를 충분히 알았더라면 콜럼바인 사건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자살방지 활동가가 된 저자는 부모들이 자녀의 ‘경보음’을 알아차리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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