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세계적인 항구 도시 바르셀로나에는 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유명한 조선소가 있다. 그곳에는 배의 모형만을 전시해 놓은 특별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다. 조선소의 역사만큼 모형 선박의 숫자도 계속 증가하여 전시관의 규모는 점점 커졌다. 처음에는 작은 방이었던 전시관이 오늘날에는 10만 척이 넘는 모형배를 보유한 가장 크고 웅장한 장소로 바뀌게 되었다. 일단 전시관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것은 모형 배의 정교함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다. 전시관 구석구석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10만이 넘는 선박의 웅장한 규모 때문만도 아니다. 천 년이 넘는 조선소의 오랜 역사와 스페인 항해 발전에 기여한 공로 때문도 아니다. 놀라움은 모형선박에 새겨져 있는 작은 글귀들 때문이다. ‘스페인 공주’라는 이름의 모형 선박에는 이런 글귀들이 쓰여져 있다. “이 배는 50년 동안 바다를 항해하면서 11번 빙하를 만났으며, 6번 해적에게 도둑질을 당했고, 9번 다른 배와 부딪쳤으며, 21번 고장이 나서 좌초되었다.” 이 글귀는 배가 겪었던 풍파와 역사를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전시관 가장 안쪽의 벽면에는 1,000년 동안 이 조선소에서 만들어 진 배들에 대한 간략한 역사가 기록되어있다. “우리 조선소에서 출고된 10만 척 중 6천 척은 침몰했고, 9천 척은 심하게 망가져 다시 항해를 할 수 없었으며, 6만 척은 20번 이상 큰 재난을 겪었다. 바다에 나가 상처를 입지 않은 배는 단 한 척도 없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10만 척의 배가 겪은 역사에서 이런 지혜를 얻은 것이다. “배가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어졌건 큰 바다로 나간 배는 모두 상처를 입거나 재난을 피하지 못했다.” 재난을 당했기 때문에 하늘을 원망하고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좌절을 겪었기 때문에 자포자기 하는 것은 가만히만 있어도 저절로 되는 것이다. 역경을 만났기 때문에 의지를 포기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이다.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한 번 넘어져서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것은 우리는 주변에서 수도 없이 보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인생에서 만나서는 결코 안 될 일을 만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나! 어떻게 이 지경까지 왔는가!” 무력한 자기 자신에 대한 자책감만이 마음을 지배하게 된다. 우리 인생은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진 배와 같다. 항해를 멈추지 않는 한 위기는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다. 바다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모습을 띨 때도 있다. 그러나 배와 사람을 동시에 삼켜버리는 무서운 얼굴로 다가올 때도 있다. 격랑과 잔잔함이 공존하는 바다에서 상처를 입지 않고 피해가는 배는 한 척도 없는 법이다. 그걸 알면서도 움켜 잡은 키를 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 주변에 어려운 환경가운데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몇 년 전보다 경제환경이 조금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서민들의 삶은 바람 잘 날이 없다. 콜로라도의 집 값이 오르고 비즈니스가 활황이라고 하지만 개개인의 삶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 만도 않다. 여전히 직장에서 불안한 나날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다. 갑작스런 교통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의 이야기도 들려온다. 우리 교회에서는 지난 한 달 사이에 두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 믿었던 자녀들에게 어려운 소식이 들려오면서 가슴에 진한 멍한 가진 사람들도 있다. 이미 아픔을 겪고 있는 분들도 많고 앞으로 어려움이 닥칠 것을 염려하면서 아파하는 분들도 많다. “소나기는 피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맞는 것이 낫다”라는 말이 있다. 가능하면 옷이 젖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그래서 비가 쏟아질 때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해 본다. 한국에서는 과거에 길거리에서 걷는 일이 많았다.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지면 비닐 우산을 파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래도 비를 피해볼 생각으로 그 비닐 우산을 산다. 처음에는 괜찮은 것 같은데 바람이 한 번 불면 너무도 쉽게 우산이 뒤집혀버린다. 그것을 다시 고치는 동안 비를 그대로 맞고 있어야 한다. 우산의 여기저기가 찢겨나간다. 그 구멍으로 비는 쏟아져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 옷은 이미 젖을 대로 다 젖어버린다. 그때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비를 피하지 말고 맞는 것이 낫겠다” 그때는 아예 피하지 말고 맞는 것이 좋다. 이왕 젖은 것 시원하게 맞는 것도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이 되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서 깨끗이 샤워를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으면 그만이다.

    “햇빛만 비추면 그곳은 사막이 된다”는 말도 있다. 비도 오고 눈도 와야 한다. 먹구름이 낄 때도 있고 세찬 바람이 불 때도 있어야 한다. 햇빛만 일년 내내 비치면 그곳은 그 누구도 살 수 없는 사막이 되고 마는 것이다. 상처 없는 배가 하나도 없듯이 상처 없는 인생도 없는 법이다. 우리는 가능하면 상처가 없기를 바라며 살고 있다. 하지만 상처 없는 배는 한 번도 항해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마찬가지로 상처 없는 인생은 아직 세상을 살아보지 않은 것이다. 인생 항해를 나간다는 것은 결국 상처를 입는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상처에는 반드시 치료의 손길이 있다. 어떤 부모도 자녀의 상처가 덧나도록 그냥 두지는 않는다. 하물며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까지 주신 하나님이 우리의 상처를 치료해 주시지 않겠는가? 하나님이 치료하신 후에는 반드시 새 살이 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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