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홍콩을 여행할 때였다. 마카오로 들어가기 전에 간식거리를 찾아 홍콩의 한 슈퍼마켓에 들러 소시지 한 봉지를 샀다. 한국의 비엔나 소시지 비슷하게 생긴 거였는데, 맛있어 보여서 별 생각없이 집어 들었던 것이다. 마카오로 들어가는 배 안에서 소시지를 뜯어서 한입 베어 물었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쫄깃쫄깃 짭쪼름한 것이 ‘세상에 이런 맛이’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만큼 맛있었다.
한봉지를 다 먹을 때까지, 소시지를 한입한입 음미하며 먹었는데, 마지막 소시지를 입에 넣고 나니 얼마나 아쉽던지…
그리고 몇 달 있다가 당시 남자친구가 홍콩으로 출장을 간다며 갖고 싶은게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나는 당장 “소시지를 좀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내가 그 소시지를 샀던 홍콩의 수퍼마켓 위치와 소시지가 있던 자리, 소시지 봉지의 모양까지 상세히 설명하며 “꼭 좀 사다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남자친구는 1주일간의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남자친구를 보자마자 “내 소시지 사왔어?” 하고 물었다. 남자친구는 우울한 표정으로 “세 봉지를 샀는데, 깜빡 잊고 호텔 냉장고에 넣어놓고 왔다”며 홍콩에서 산 지갑을 내밀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 나는 그 지갑으로 남자친구를 패며, “내가 지갑 사다 달랬냐? 소시지 사오라고 했쟎아. 소시지!!!” 하며 마구 행패를 부렸다.
남자친구는 미안해 어쩔 줄 모르며 “사긴 샀는데…”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1주일간 그 맛있는 소시지를 다시 맛볼 날만을 기다린 나는 분노에 가득 차서 “내 소시지”를 포효했다.

집착이라는 것이 그렇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점점 그 물건에 빠져들게 된다. 간절히 바라는 것일수록 다른 것들을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머리가 복잡하다. 그래서 가끔은 아무 생각없이 좀 쉬어줘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생각없이 쉰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뽀송뽀송한 침대 시트로 교체하듯 생각을 다른 생각으로 교체하는 것이다. 잡다한 생각들을 더 높고 깊고 넓은 생각들로 교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혼자서 신라시대의 원효대사처럼 살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을 내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솔직히 요즘 세상에는 맞지 않다. 누가 그러겠는가. 하지만 모든 성인들의 말씀은 내가 해석하기 나름이다.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을 내밀라는 말을 곧 “너도 한대 맞게 왼쪽 내밀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내 맘이다.
내 맘에 드는 문구 하나를 골라 생각으로 복잡해질 때 곱씹어보자. 자꾸 그 의미를 되새기다 보면 내 마음도 한결 더 가벼워지고 몰랐던 새로운 뜻을 깨닫게 될 수도 있으니 일거 양득이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때 먹지 못한 홍콩 소시지가 생각이 나는 것을 보니 나도 생각을 교체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다. 냉장고에 넣어둔 미국 소시지를 먹으러 가야겠다. 생각의 교체는 이런 방법으로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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