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는 이민국에 통역을 다녀왔습니다. 시민권자와의 결혼을 통한 영주권 신청 케이스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시민권자인 배우자가 그 전에 세 차례나 이혼을 한 경력이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 결혼의 진위를 가리기 위하여 이민국은 상당히 세심한 심사를 하게 됩니다. 수 개월 전에 1차적인 인터뷰 심사를 하였는데, 또다시 인터뷰 심사를 받게 된 것입니다. 예상했던대로 남편과 부인을 따로 따로 분리하여 인터뷰가 실시되었습니다. 거의 두 시간에 걸친 집요한 질문공세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내용을 모두 기록하여 당사자의 확인절차를 밟습니다. 그렇게 해서 배우자인 부인으로부터 다양한 질문에 대한 답을 받아놓고, 밖에 있는 남편과 교체하여 같은 질문을 합니다. 과연 모든 답이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질문이 이어집니다.
문제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집안의 어디에 있느냐, 라는 질문에서 생겼습니다. 부인은 화장실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남편은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대답하기를 “화장실, 베드룸에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분이 ‘bathroom’을 ‘베드룸’으로 발음한다는 것을 알아듣고 “in the bathroom” 이라고 통역을 하면서 순간 입장이 곤란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남편의 “화장실”이라는 말은 못알아듣고 “베드룸 (bedroom)”이라는 말을 분명히 들은 면접관이 통역관인 저를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옆에 있는 미국인 변호사도 다소 당황합니다. 부인은 화장실이라고 했는데, 남편은 ‘베드룸’이라고 하고, 통역관은 ‘bathroom’이라고 하니, 걱정도 되고 혼돈이 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집요한 질문이 이어집니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화장실에 있다는 말이냐, 아니면 침실에 있다는 말이냐, 를 집요하게 묻습니다. 그때마다 남편은 “화장실, 베드룸”이라고 반복하여 답을 하였습니다. 저는 할 수 없이 면접관에게 상황에 대한 설명과 양해를 구하고, 남편에게 한국말로만 답을 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래도 그 남편은 마치 그 단어만은 확실히 알고 있다는 듯이 ‘베드룸’이라는 답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되자 면접관은 재차 확인하기 위하여 화장실과 침실을 포함한 아파트 내부를 그리도록 하고 집중적인 질문을 해야만 했습니다. 인터뷰가 끝났을 때 저는 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 밖에도 한국인의 발음 때문에 고생하는 영어는 많이 있습니다. 이혼 소송과 관련하여 통역을 하던 때였습니다. 미국인 남편과 평생을 살다가 이혼을 하시는 아주머님은 대단히 분개하였습니다. 브록큰 영어(broken English)를 쓰면서 자기 주장이 강한 성격의 아주머니였습니다. 그렇게 남편을 위하여 평생을 기여하며 보살펴주었는데 어느날 자신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생활하는 것에 화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분은 어떻게 해서든지 남편으로부터 많은 위자료를 받아내기 위하여 애를 쓰셨습니다. 법적인 논리와 설명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손가락이 굽도록 거친 일을 하며 저금한 돈까지 빼돌리고 자신을 배신했다는 것 때문에, 모든 것을 불살라서라도 보복하기를 원했습니다. 옆에서 보기에 정말로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처음에 한 동안은 그 말의 뜻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문맥으로 짚어봐도 쉽게 의미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사투리라고 생각을 했지만 아무래도 사투리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새로운 문맥에서 그 말을 듣고서야 그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기 직장에 있는 동료들에게 이야기 했더니, 동료들이 “고스랑 컴스랑”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그 말이 ‘주는대로 받는다’ 라는 의미의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순간의 약한 소리와 죽어가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두드러지게 들리는 소리만 듣고, 그 말을 계속하여 쓰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이민 1세들의 어수룩한 영어 때문에 제가 곤란을 느끼는 경우는 이민국이나 법원과 같이 중요한 상황에서 종종 있습니다. 법원의 재판에도 자주 가다보면 쉬운 대답을 영어로 하는 한인들을 많이 봅니다. 한국어와 영어의 언어적 특징으로 종종 ‘예’ 또는 ‘아니오’의 대답이 상반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령 “You didn’t receive a receipt after you loaned him the money, did you? (그에게 돈을 빌려주고 영수증을 받지 않았지요?)”라는 질문이 나오면 미처 통역관이 통역도 하기 전에 영어를 알아들은 증인이 ‘맞아요’라는 의미로 “예스”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리곤 제가 질문을 통역하고 나서 증인의 대답을 통역할 때는 “No”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순간 한국어를 모르는 판사 및 양쪽 변호사들이 통역관인 저를 의심하는 듯한 기운을 느끼면서 불편함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법정통역을 할 때에 통역관은 거의 기계적인 차원의 기준에서 일을 합니다. 증인들의 말을 있는 그대로 가감없이 최선을 다하여 정확하게 옮기는 것이 법정 통역관의 의무입니다. 따라서 통역관이 임의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상당한 주의를 요합니다. 그러다 보면 그 한 마디의 혼돈되는 대답으로 여러차례 진의를 확인하는 질문의 공방이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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