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한인들끼리 처음 만나면 흔히 '미국에 온 지 몇 년 되셨어요?'라고 소위 이민 나이를 묻습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약간은 뒤가 켕기는  듯 주춤 자신의 이민 나이를 말합니다. 무엇이 켕기는 것일까요? 일반적으로 이민 나이에 비하여 이루어 놓은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이  주춤하게 합니다.
저도 1990년도에 한국을 떠났고, 이제까지 미국에 살고 있으니까, 굳이 저의 이민 나이를 따지자면 20년이 훌쩍 넘은 것입니다. 저 역시 누군가 저의 이민 나이를 물어오면 20여년 이라고 주춤 말합니다. 말이 20년이지 돌이켜보면 그동안 먹고 살면서 아이들 키운 것이 기적처럼 보일 정도로 닥치는대로 살아야 했던 홀연한 세월이었습니다. 마치 자칫 허공으로 떨어질 것 같은 우주정거장을 짓는 것과 같이, 중력도 없어 받침도 기댈 곳도 없는 허공에 떠도는 까치집을 지어야 했던 세월이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이민자들의 삶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한인들에게 이민 나이를 묻는 것은 각자의 치부를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느끼는 치부 중의 하나가 바로 영어실력입니다. 자신의 영어실력에 콤플렉스를 갖고 사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민 나이를 대답할 때마다 주춤하는 것입니다. 같은 이민자들끼리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민 나이 1-2년의 초보 이민자가 이민 나이 10 ~ 15년이 된 중년 이민자의 고민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초보 이민자는 중년 이민자의 영어가 상당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현실을 발견하는 순간 의아해집니다.
그래서 이민자들 가운데 영어를 베고 자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눈뜨고 나면 직장가고, 주말이나 저녁 시간 틈을 내서 영어공부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의 그러한 고생은 대부분 무위로 끝나고 맙니다. 한국에서 배웠던 그대로를 미국의 영어학교 선생님들이 영어로 수업을 해줍니다. 그러니 한국에서도 안 되었던 영어가, 미국에서 될 리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콜로라도에 이민을 오는 사람들을 만날 때 종종 해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민 생활 2년 이내에 반드시 영어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해줍니다. 그동안은 사업보다도, 직장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영어라고 말해줍니다. 왜냐하면, 아이러니하게 들릴 수 있지만 영어는 집중적으로 익혀야 하며, 살아가면서 저절로 배워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만약 2년 이내에 영어를 제대로 잡지 못한다면, 미국에서의 인격적인 인생은 포기하라, 라고 대단히 불쾌한 말을 해주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인권을 찾지 말라고도 말해줍니다. 심지어 미국에서 영원히 바닥청소나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하는 대단히 기분상하는 말도 해줍니다. 통역과 상담이 필요해서 저에게 올 때는 (조금 과장하여) 시간 당 무조건 백여불씩 내야 하며, 절대로 비싸다고 불평도 하지 말라고도 말해줍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게 말해줘도, 실제로 2년 내에 영어를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굳이 있다라고 주장을 한다면, 그렇게 많은 노력을 해서 영어를 상당히 익힌 사람도 몇 명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영어의 수준은 제가 기대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렇게 막말을 해줘도 사람들은 저에게 분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마워합니다. 단단한 결기를 세우고 저의 사무실을 나갑니다. 그렇지만 막상 그분들이 영어공부하는 것을 보면 답답해집니다. 한국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하나같이 그렇게 매달렸지만 한 푼 성과도 없었던 그 방법 그대로를 답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름 방법을 설명해주고자 하지만 시간이 여의치 못합니다. 그러고 보면 후회를 합니다. 괜히 영어공부를 하라고 강조해서, 가뜩이나 없고 힘든 이민 생활에 시간을 헛되이 쓰게 했다는 자책감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 년 전에 제가 '영어를 포기하면 행복해진다'라는 책을 썼던 것입니다. 그런 자책감을 덜고, 또 많은 사람들이 영어공부를 제대로 하는 방법을 스스로 익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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