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해서 그렇지 않은 한인 1.5세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전체적인 면에서 볼 때 소수이기는 하지만, 이민생활의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주 열심히 학업에 매진하는 학생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영어를 늦게 배웠음에도 단연코 학교의 토론대회에서 입상하는 학생도 있고, 전체 학년에서 최우등 성적으로 졸업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대학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는 학생들도 있고, 복수의 명문대학에 합격하여 행복한 고민을 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부모가 물심양면으로 열심히 도와줘서 그렇게 하는 학생들도 없지 않지만, 하루하루에 벅찬 이민생활에 애쓰는 부모님들을 보면서 스스로 철이 들어 그렇게 하는 학생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조숙하여 학업에 매진하면서 틈틈이 부모의 일도 도와주는 자녀들의 경우는 앞에서 말했듯이 상대적으로 훨씬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현대문명 속에 살아가는 미국의 이민생활에서 영어가 저절로 된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10 년을 살고, 20 년을 살고, 반 백 년을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 1세의 평균적인 영어실력은 손짓과 발짓을 모두 동원하여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쇼핑가서 계산하는 정도에 불과할 것입니다. 관공서에 전화를 하거나 찾아가서 잘 못된 고지서 문제를 문의하거나, 자녀들 문제로 학교에 가서 상담을 하거나, 은행에 가서 새로운 계좌를 개설하고, 융자신청을 하는 등의 영어실력은 되지 못합니다. 라디오를 듣거나 TV를 보고,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수준은 전혀 아닙니다. 그러니 미국에 오래 살았다고 해서 영어를 잘 할 것이라는 착각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지 못하는 것은 한국어가 영어보다 우수하거나, 한국어의 지위가 영어보다 높아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다 영어를 배우고 싶어하기는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여러가지 환경으로 인하여 영어를 제대로 습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영어권이 아닌 스페인어권 국가에서는 이와는 사뭇 대조적인 점이 있다는 것을 오래 전에 만났던 분을 통하여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파라구와이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여 대학을 다녔으며, 한국을 한 번도 다녀 온 적이 없는 이민 2세였습니다. 그분의 경우 스페인어가 유창하고 자연스럽다는 것은 당연히 이해할 수 있었는데, 문제라면 문제인 것이 그분의 한국어가 완전한 모국어 수준을 훨씬 초월하여 대단히 높은 수준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온갖 고사성어를 망라하는 어휘는 물론, 노자와 장자의 철학을 꿰뚫어 논하는 학자다운 수준의 말과 글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정말 그 배경이 놀랍고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유인 즉 파라구와이에서는 한국인과 한국어의 사회적인 지위가 현지민들과 현지어인 스페인어보다 높게 인식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한인들이 한국어에 대한 긍지가 높고,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이 한인으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누리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곳에서는 한인 2세들이 모두 하나같이 한국어를 잘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이민 초창기의 한인들이 한국인임을 창피하게 여기고, 자녀들이 한국어를 하면 야구방망이로 혼을 내주었다는 흔한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다고, 미국에서 잠시 공부했다고, 미국을 자주 왕래한다고 영어는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나 미국에서 살고 있는 한인 1세들이나 영어를 밤마다 베고 자는 것도 똑같고, 영어를 못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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