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아버지가 있다. 자녀에게 생명을 주었다는 생물학적인 공통점 외에도 아버지라는 이름에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아버지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 아버지라는 이름의 무게가 그만큼 무겁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누군가로부터 제보전화를 한 통 받았다. 아들과 어머니가 짜고 아버지를 음해해 고소했다는 내용이었다. 재판이 진행되었고, 결국 아버지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주에 당사자인 아버지 J(77)씨를 만났다. 결혼 50주년을 막 지났지만, 이혼 소송이 진행 중인 관계로 현재는 혼자 나와 방을 얻어서 살고 있다는 J씨는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젊은 시절 한국에서 건설회사와 제조회사를 경영하는 등 사업가로서 성공했던 J씨는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부도가 나는 바람에 지난 99년에 미국 뉴저지로 이민을 오게 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왔던 아들은 똑똑해서 아이비리그 대학인 브라운대학을 졸업하고 현재는 변호사와 결혼해 살고 있다. 그런데 J씨 부부는 여자 문제와 경제 문제 등으로 서서히 사이가 틀어지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J씨는 나이가 되었으니 웰페어를 타기 위해 신청을 했는데, 2년이 지나도록 웰페어가 나오지 않았다. 신청을 부탁한 아들에게 물어봐도 아직 안되었다는 말만 하며 차일피일 미루었다. 그러던 작년 4월에 부인이 웰페어가 나왔는데 생활비로 써야 하니 그 돈을 줄 수는 없다고 통보했다. 이에 J씨는 내 돈이니 내놓으라고 옥신각신하다 부인을 밀쳤다. 아들 집에 웰페어 카드를 두었다는 말에 J씨는 당장 아들 집에 가서 카드를 가지고 오라고 요구했다. 집을 나간 부인은 몇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후 경찰이 찾아와서 폭행죄로 J씨를 체포했다. 지인을 통해 아라파호 카운티에 알아본 결과 J씨의 웰페어 카드는 2년 전에 벌써 발급되어 매달 몇백달러의 돈이 꼬박꼬박 지급되고 있었다. 며느리가 서명을 해서 이 돈을 매달 아들 부부가 갈취해왔다는 것을 뒤늦게 안 J씨는 기가 막혔다.

      재판을 준비하면서 J씨는 더욱 더 억장이 무너졌다. 아들은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에다 섹스광”이라고 진술했으며, 부인은 “사건 당시 화장실로 도망쳤으나 화장실까지 따라와서 배와 옆구리를 차고 머리와 얼굴도 가격하는 등의 폭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당시 J씨를 체포했던 경찰은 진술서에서 “J씨의 집을 찾아갔을 때 그에게서 심한 술냄새가 났고, 그는 침착하게 말을 하는 아들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J씨는 매우 화가 나 보였다. 부인의 옆구리는 붉었고 약간 멍이 들어있었으며 가볍게 긁힌 흔적이 있었다. 그러나 눈에 띌만한 부상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J씨는 부인이 멍들었다고 경찰에 보여준 사진 3장은 원래부터 있었던 반점을 보여준 것이고, 지금도 그대로라며 반박했다. 또 70세 고령의 여성을 손과 발로 무자비하게 폭행을 했다면 어떻게 운전을 해서 아들 집까지 갈 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시했다. 
이 재판을 처음부터 지켜본 J씨의 친구 M씨는“재판 과정에서 J씨 부인은 폭행을 당했다는 부위와 폭행 방식의 진술이 엇갈리는 등 일관성이 떨어졌다. 또 아들은 아버지 앞으로 돈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고 부인과 공모해 2011년 3월부터 2013년 3월까지 2년간 20,135달러를 생활비로 사용했음을 인정했다”라고 전했다. 결국 배심원단은 3급 폭행 혐의로 기소된 J씨에 대해 무죄(Not Guilty)를 선언했다.
아들 측과 전화통화를 시도하자 아들은 “별로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무죄 평결을 받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Not Guilty는 정확히 말하면 무죄(innocent)는 아니다. 배심원단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했다는 충분한 증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유죄로 평결을 내리지 않았을 뿐, 아버지가 무죄(innocent)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고 말했다. 

     J씨는 “힘들게 일해서 아들을 대학까지 공부를 시켰다. 똑똑하고 공부도 잘해 자랑스러웠던 그 아들이 나를 이렇게 배신할 줄은 몰랐다”며 비통해했다. 그는 현재 재산 분할을 요구하고 있으며, 아들 내외를 정부 보조금 횡령 혐의로 고소할 예정이다. 그러나 그런 J씨의 마음은 편치 않다. 아들이 분명 괘씸하지만 그래도 아들이니까,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아버지라서 그렇다. 그렇게 했던 아들의 입장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살짝 밀쳤든 정말 때렸든 어머니에게 한 행동은 분명 잘못되었다. 아버지가 과거에 했던 말이나 행동이 자신에게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다. 이번 사태는 누구의 잘잘못을 논하기 이전에 가족간의 믿음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할 사안이다. 그 아들도 아버지가 되었다. 아버지라는 이름은 쉽게 가질 수 있지만, 그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진정한 아버지가 되는 것은 참 험난한 길인 것 같다. 나는 과연 아버지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인지 한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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