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월x일  x요일 흐림

     오늘도 나는 남편에게 혼이 났다.
남편이 혼자 아이들 방에 마루를 까느라 바쁜 것 같아서 내 딴에는 생각한다고 평소에 안 하던 빨래를 했다.
아침에 세탁기에 넣어놓고 까맣게 잊어버렸다가 저녁에 발견한 것까진 좋았는데, 남편이 난리가 났다.
 작은 아이 드레스를 다른 빨래와 함께 일반 사이클로 돌렸다는 것이다. 작은 아이 드레스랑 큰 아이의 꽃무늬 치마는 젠틀 사이클로 돌려야 옷감에 손상이 안 간단다. 그러면서 “제발 시키지도 않은 일 좀 하지 말라”고 핀잔이다.
 아이들 옷을 내가 사질 않으니 젠틀 사이클인지 일반 사이클인지 알게 뭐란 말인가…. 괜히 안 하던 짓 했다가 혼만 났다. 앞으로는 세탁기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겠다.

X월 x일 x요일 맑음

      오늘도 나는 남편에게 혼이 났다.
아침에 무슨 바람이 일었는지 갑자기 요리가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프렌치 토스트를 하겠다고 아이들에게 선언했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엄마가 요리를 하겠다고 하니 조금 불안해했다.
프렌치 토스트는 참 쉬운 요리이다. 요리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달걀을 잘 푼 후에 우유를 넣어 잘 섞는다. 그런 다음 식빵을 살짝 달걀물에 담갔다가 달궈진 후라이팬에 굽는다. 그런 다음 버터를 바르고 그 위에 메이플 시럽을 뿌려서 먹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내가 만든 프렌치 토스트를 먹어보더니 맛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질척해서 도저히 못 먹겠단다. 안이 하나도 안 익었다고 잇따라 불평불만이다. “힘들게 한 건데 그냥 먹어!” 하고 애들을 윽박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남편이 나와서 아이들의 프랜치 토스트를 한입 먹어보더니 다시 후라이팬을 스토브 위에 올린다. “안에 하나도 안 익었쟎아. 저렇게 눅눅한걸 어떻게 애들한테 먹여.”하며 다시 프렌치 토스트를 굽는다. 얄밉게도 아이들은 아빠가 만든 프렌치 토스트를 맛있다며  4조각씩이나 먹고 뽈록한 배를 자랑한 채 학교로 갔다.
 내 프렌치 토스트는 닭에게 가져다 주었다. 닭들은 맛있다고 얌얌 먹는다. 그렇다. 나는 닭들에게 줄 요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앞으로는 요리도 하지 말아야겠다.

X월 x일 x요일 더움

     오늘도, 어제도, 그저께도 나는 남편에게 혼이 났다.
남편이 회사 가기 전에 만들어놓은 호박빵을 냉장고에 넣어놓으라고 신신당부하고 갔는데, 잊어버리고 안 넣었다. 다음날 새벽에 회사에서 돌아온 남편은 더운 날씨에 쉬어버린 호박빵이 그대로 스토브 위에 있는 것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남편은 힘들게 만든 빵을 아이들에게 못 먹이게 된 것이 속상해 나를 들들 볶았다.
 남편이 취미삼아 텃밭에서 키운 비트가 내 팔목만하게 자랐다. 나는 신이 나서 맛있어 보이는 비트 레시피를 찾아보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하고 냉장고 야채 박스에 넣었다. 한달 후, 나는 냉장고 야채 박스 구석에서 완전히 썩어버린 남편의 소중한 비트를 발견했다. 혹시 남편이 볼까 봐 얼른 버렸다. 
  나는 오늘도, 어제도, 그저께도 내가 사고뭉치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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