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살기 위해서는 남자든 여자든 운전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국과 한국의 운전습관을 비교하게 된다. 한국은 다 건너지도 않았는데 슬금슬금 차가 위협적으로 움직이거나 또 습관적으로 경적을 울려댄다. 콜로라도에서는 도로에서 자동차 경적소리를 잘 듣는 일이 없다. 신호 대기 중에 잠시 딴짓을 하느라 신호가 바뀐 것을 미처 못 보고 있다가 뒤늦게 바뀐 것을 알아채더라도 뒤의 차들은 아무 말 없이 인내심을 가지고 내가 움직이기를 기다려준다. 한국에서는 성질 급한 운전자들이 많아서 노란색 불이 들어오기가 무섭게 차를 움직인다. 미리 신호등의 방향을 예측해서 차를 움직이다가 사고가 나는 경우도 다반사다. 미국은 그런 일이 흔치 않다.   상대 차선이 빨간 불로 완전히 바뀐 다음에도 다시 주변을 살펴서 늦게 움직이는 차량은 없는지를 확인한 다음 천천히 움직인다. 차선을 바꾸는 것도 한국에 비하면 참 쉽다. 한국은 무조건 머리부터 들이밀어야 한다. 그러면 뒤에서 마지못해  자리를 내준다. 그렇지 않으면 수백 미터를 가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동차의 행렬에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 


     미국은 깜빡이를 켜면 십중팔구 뒤의 누군가는 속도를 줄여 내가 들어올 공간을 확보해준다. 내가 그래도 불안해서 차선 내에 들어오지를 못하고 있으면 하이빔을 깜빡깜빡해서 들어오라고 신호를 넣어준다. 미국의 주차장은 참 널찍하다. 그래서 굳이 문콕 걱정 없이, 사이드 미러를 접을 필요도 없이 넉넉하게 차를 주차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의 주차장은 정말 너무 좁아서 나 같은 운전 미숙자는 주차할 엄두도 못 낸다. 그래서 한국에서 운전하던 사람들은 미국에 오면 모두 프로가 된다. 앰뷸런스나 소방차 같은 응급 차량이 지나가면 차들은 홍해의 바다처럼 쫙 옆으로 갈라진다. 비상 응급차량들은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가고 나면 다시 차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제갈 길을 간다. 한국에서는 응급차량들이 지나가려면 참 오랜 시간을 일반 차량들과 씨름을 해야 한다. 요즘은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수년 전 남편과 함께 한국에 갔을 때의 일이다. 새벽에 도착해서 택시를 탔는데, 하필이면 총알택시였다. 평상시에는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한산한 새벽 시간대이다 보니 차가 별로 없었다. 이 아저씨, 정말 무시무시한 속도로 차를 몬다. 앞 좌석에 앉은 남편은 문 위에 있는 문고리를 꽉 잡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딱 20분 만에 도착했는데, 내리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남편은 문고리를 잡은 팔에 너무 힘을 줘서 팔이 저리다고 끙끙댄다. 그러면서 하는 말... "저 운전사 아저씨, 나스카(NASCAR) 드라이버 출신이냐?"  


     나는 주차도 참 못한다. 내가 가장 못하는 것은 평행주차다. 거리 감각도 없고 각도 감각도 없으니 딱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다. 덴버 다운타운에 가서 평행주차를 할 일이 생기면 나는 참 난감하다. 어디나 그렇듯이 다운타운 지역은 외곽 지역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고 주차공간 확보도 어렵다. 그래서 눈에 띄는 자리가 하필이면 평행주차 자리면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역시 다운타운에서 더듬더듬 차를 몰고 가는데, 갑자기 도로가 확 트였다. 경찰차가 경광등을 번쩍거리며 나타난다. 그런데 경찰차가 내 앞을 지나가고, 뒤이어 검은색 리무진, 그 뒤로 검은색 옷을 입은 흑인들의 차량이 수십 대가 이어졌다. 장례식 차량들이다. 미국에서는 고인을 장지로 옮길 때 경찰에게 에스코트 요청을 할 수가 있다. 그럴 때는 일반 차량들은 고인에 대한 애도의 의미로 차를 옆으로 비켜서 천천히 움직이며 장례 차량들이 먼저 지나갈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 나는 그때 왕초보여서 그런 걸 몰랐다. 고인은 흑인 할아버지였다.

     

     사회생활을 잘한 할아버지였는지, 장례 차량이 수십 대가 이어졌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나도 장례 차량에 휩쓸려 같이 장지 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양 사방이 다 장례 차량에 둘러싸여 달리는데,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감도 잡을 수가 없었다. 같이 울면서 장지로 달렸다. 한참을 가다가 신호 대기에 걸렸다. 옆 차량이 창문을 내리더니 뚱뚱한 흑인 아줌마가 "당신 뭐냐? 우리를 왜 따라오고 있느냐?"고 물었다. 난감해하며 "사실은.... 나도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여기가 어디냐? 나는 오로라로 가야 하는데...."하고 되물었다. 흑인 아줌마는 황당해하면서도 친절하게, "저 앞 신호등에서 유턴을 해서 무슨무슨 거리가 나오면 거기서 다시 좌회전을 하면 된다"고 말해줬다.  거듭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앞 신호등에서 흑인 아줌마 말대로 유턴을 해야 하는데 너무 긴장해서 그대로 직진을 하고 말았다. 그 아줌마랑 또 한참을 나란히 달리며 서로 흘끔거리며 또 울었다. 내가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운전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남편 덕분이다. 방향감각 제로이자 운전감각이 꽝인 나를 데리고 새로 운전을 가르치면서 인내심 많은 남편도 속이 까만 숯덩이가 되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가르친 덕분에 나는 이제 제법 살살 마실을 다닐 정도는 되었다.  그래도 남편은 늘 내게 말한다. "운전 조심해." "알았어, 알았어. 날 몰라?" "너무 잘 알지. 그러니까 운전 조심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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