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목사, 실패한 예수

2013-03-07     weeklyfocus

운동선수의 꿈은 우승을 하는 것이고, 학생의 꿈은 1등을 하는 것이고, 직장인의 꿈은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사의 꿈은 무엇일까요? 목사에게 성공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최근 한국에서 성공했다고 인정받던 목회자들이 이런 저런 잘못으로 연이어 사회의 지탄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합니다. “그 목사도 별 수 없군!”이란 냉소적인 반응을 접할 때 같은 목사로서 그 “성공한” 목사들의 초창기의 꿈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목회를 직업으로 생각하는 목사가 아니라면 모든 목사들의 꿈은 “예수님의 영광”일 것입니다. 아무리 목회가 힘들고 어려워도 그 예수님의 영광을 생각하면 목사들은 가슴이 뛰고 새 힘을 얻게 됨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목회의 절정기에 이른 목사들이 말하는 성공이 예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로 인해 예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져 짓밟히는 행위를 서슴없이 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이것이 모든 목사들이 꿈꾸는 “성공한 목회”의 종착점이라고 한다면 참 절망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렸을 적 놀이터에서 즐겨 타던 시소를 기억하십니까? 시소의 원리를 말하라면 한 사람이 올라가기 위해 다른 사람은 내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한 사람이 내려가면 다른 사람은 올라갑니다. 둘 다 올라갈 수도 없고 둘 다 내려갈 수도 없습니다. 세례 요한의 명언 중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그는 이 세상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의 이름이 높여지기 위해서 자기의 이름이 낮아져야 함을 영적으로 깨닫고 예수님께서 올라가실 수 있게 자신이 내려가는 길을 결심한 것입니다. 그 후 세례 요한은 시소를 타고 내려가 듯 한없이 내려가게 되고 결국 감옥에서 외로이 지내다가 목이 베어 죽게 됩니다. 그의 죽음을 보며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실패한 선지자라고 평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성공을 위해 그가 선택한 실패입니다. 오늘 신앙인으로서 나의 꿈은 무엇입니까?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내가 소망하고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혹시 성공했다 생각했는데 시소의 정상에서 나 때문에 땅에 추락한 예수님을 내려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열심히 봉사를 하고, 열심히 선교를 했는데 언제부턴가 내 열심 속에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오직 나만이 높임을 받고 있다면 시소의 건너편을 내려 보십시오. 

이 시대에 예수님의 성공을 위해 나의 실패를 택하고자 하는 신앙인들이 필요합니다. 내 반대편에 타고 계신 예수님이 높이 올라가시기 위해 내 자신을 낮추고 내려가는 것이 사람들에게 실패라는 평가를 듣는다 해도 그 예수님의 올라가심을 보며 기뻐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는 것이 정말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요? 내려가는 자는 그 낮은 자의 자리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사람들이 인정을 안 해줘도, 때로 홀대를 당하고, 때로 무시당하고, 때로 억울해도 너무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려가는 자의 눈이 나의 헌신과 희생을 통해 올라가시는 예수님에게 향해 있다면 그 모든 경험 속에서 감사와 기쁨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새로운 꿈을 꿀 때입니다. 그 동안 올라가는 것에 익숙한 삶이었다면 이제 예수님을 위해 내려갑시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세례 요한의 고백처럼 실패한 자와 같이 낮은 자의 자리에서 내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시는 예수님을 기뻐하는 삶을 삽시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사람들의 대우도 관심도 받지 못하는 지극히 평범한 신앙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섭섭해 하지 않고 답답해하지 않고 묵묵히 내 삶을 통해 예수님의 이름이 높여지기를 소망하며 그 낮은 자의 자리를 지키는 신앙인이 되는 것을 꿈꾸는 자가 행복한 자입니다.

오늘 나의 꿈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