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 분모
덴버 브롱코스가 파죽의 11연승을 올리며 1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결국 수퍼볼 진출이 좌절됐다. 지난 토요일 오후 덴버 홈구장에서 덴버 브롱코스(13승 3패)와 와일드 카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볼티모어 레이븐스(10승 6패)와의 경기가 열렸다. 볼티모어가 AFC 와일드카드 플레이오프에서 인디애나폴리스 콜츠를 24-9로 꺾고 2라운드에 오른 반면, NFL 최고 승률팀인 덴버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를 부전승으로 통과하면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덴버의 승리를 점쳤었다. 모두가 세기의 쿼터백 ‘페이튼 매닝’을 앞세워 11연승으로 정규시즌을 끝마친 덴버의 상승세를 꺾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덴버는 볼티모어에 발목이 잡혔다. 4쿼터 종료 7분11초를 남겨두고 덴버가 38-25로 앞서나갈 때만 해도 이날 경기는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볼티모어가 4쿼터 종료 31초를 남겨두고 쿼터백 조 플라코의 70야드 패스를 받은 자코비 존스가 극적인 터치다운에 성공,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1차 연장에서 매닝의 어이없는 패스를 가로채 공격권을 되찾은 볼티모어는 결국 2차 연장 1분42초에 키커 저스틴 터커의 47야드 필드골로 기나긴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필자는 풋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영어시간에 풋볼(Football)과 축구(Soccer)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선생님 또한 풋볼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한국에 오래 살던 이들이면 대부분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풋볼은 단지 미식 축구라는 어학적인 의미만 내게 남겨져 있었다. 이 때문에 풋볼의 경기규칙도 잘 모르고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풋볼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덴버가 연승 행진을 이어가면서 스포츠 대표채널인 ESPN을 매일 장식하는 것을 보고 브롱코스가 멋져 보이기 시작했다. 경기규칙조차 모르던 필자가 브롱코스의 화려한 연승 행진에 반해 풋볼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일종의 소속감으로 시작된 관심이었다. 그러다 차츰 풋볼을 보는 동안 여느 미국인들처럼 피자와 치킨, 맥주를 즐기기 시작했고, 스포츠 용품 전문매장에 걸려있는 페이튼 매닝의 티셔츠와 브롱코스의 마크가 찍힌 주황색 모자에도 손이 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매닝에 대한 극찬을 늘어놓으며 수퍼볼까지 문제 없이 갈 것이라며 호언장담했다. 물론 친구는 예전의 나처럼 풋볼에 대한 장황한 내 설명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내게 풋볼이라는 스포츠가 새롭게 다가온 것은 덴버 브롱코스 때문이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지난 몇달동안 브롱코스에 푹 빠져 있었다. 경기가 있을 때마다 이들은 함께 모여 한 팀을 응원하는 동지가 되어 있었다. 이런 장면을 보면서 마치 한국 대표팀이 출전한 월드컵 경기를 보는 듯했다. 이번 패배를 안타까워하면서 당시의 실수와 미비했던 전략을 몇날 며칠을 곱씹어보면서 문득 나도 이젠 콜로라도 사람이 다 되었구나 하며 왠지 모를 동질감에 휩싸였다. 비록 브롱코스는 졌지만 모국을 떠나 뿌리가 필요했던 우리들에게 마치 공통분모를 만들어준 느낌이었다.
필자의 덴버 사랑이 더욱 두터워진 것은 얼마전 덴버 너겟츠 게임을 보러 가면서였다. 우연히 생긴 티켓을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 아들 녀석들과 함께 펩시 센터를 찾았다. 고교시절 이충희 선수를 보기 위해 뻔질나게 다녔던 농구장이었지만, 미국에서는 처음 찾는 경기장이라 낯설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그날 덴버는 유타와 일전을 치렀는데 홈구장의 이점이 십분 활용됐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너겟츠를 연호했다. 볼이 들어갔건 안 들어갔건 전혀 상관이 없어 보였다. 골이 들어갔을 경우에는 함성이 더 커졌다. 이들 열성 팬들에 휩싸여 관람을 하다 보니 어느새 필자도 함께 함성을 지르고, 응원의 박수를 손바닥이 빨개질 정도로 치고 있었다. 이날 경기는 덴버가 승리를 했다. 우린 경기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주차장까지 걸어가며 마치 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처럼 즐거워하면서 웃음을 나눴다. 경기를 관람한지 2주가 지났지만 아이들은 경기장에서 외쳤던 너겟츠의 응원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그러면서 어느새 이들은 틀림없는 덴버 소속의 아이들이 되어가고 있다.
필자 또한 브롱코스와 너겟츠를 응원하며 어느새 진짜 콜로라도 주민이 되어버린 것 같다. 우린 스포츠의 힘을 이미 알고 있다. 단순히 웃기만 하는 오락 프로그램에서조차도 팀 단위로 미션을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볼 때면 더욱 감동스러운 이유는 하나의 목표를 가진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민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올해 각 단체들에게 다양한 체육대회 개최를 강력히 추천한다. 비록 적은 규모의 대회일지라도 스포츠는 모두가 하나되는 공통 분모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될테니 말이다. <김현주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