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셨습니다
지난 일년을 뒤돌아 보면‘어렵다’라는 말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다. 어렵다 해도 이렇게까지 어려웠던 적이 없었다. 정말이지 2012년은 인고의 한 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올 한해 콜로라도 뉴스를 정리하다 보니, 단연 이슈는 오로라 극장 총기난사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콜로라도는 단숨에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지난 10월 제시카의 죽음이 기억에 남는다. 이제 갓 열 살인 제시카 리지웨이가 등교길에 납치당했다 결국 토막 사체로 발견된 사건 말이다. 이후 제시카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제시카의 이름을 딴 공원까지 생겼지만, 그 아이를 기억하기 보다는 아픔만 더욱 되새길 것 같다. 이외에도 콜로라도는 산불로 시름한 한 해였다. 콜로라도 스프링스 산불로 인해 5천여 명이 집을 잃었고, 하염없이 타들어가는 콜로라도를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미국은 총기난사 사건으로 얼룩진 한 해였다. 올 2월 조지아주 한인 스파에서는 백정수씨가 난사한 총에 백씨를 포함해 한인 일가족 5명이 사망했다. 4월에는 캘리포니아 오이코스 신학대학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7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당했다. 이 사건의 범인 역시 한인이어서 더욱 놀란 사건이었다. 현지 언론들은 이 총기 난사 사건이 캘리포니아 주 역사상 대학 캠퍼스 내에서 발생한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보도했고, 이로 인해 2007년 4월 한국 유학생 조승희에 의해 일어난 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사건의 악몽을 떠올리기도 했다.
지난 7월에는 이곳 오로라에 소재한 한 극장에서 제임스 홈즈가 총기를 난사해 12명이 사망하고 60여명이 넘게 부상당했다. 8월에는 위스콘신주 한 시크교 사원에서는 백인우월주의 남성이 총기를 난사해 6명이 사망했다. 이렇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가 싶었는데 12월에 들어서자마자 오리건주 포틀랜드 교외 한 샤핑몰에서는 한 남성이 반자동 소총을 60차례 난사해 2명이 숨졌고, 코네티컷의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사건으로 어린이 20명을 포함해 27명이 사망하면서 미국 전체를 망연자실케 만들었다. 이도 모자라 다음날 콜로라도의 롱먼트에서 또다른 총기 사건이 발생해 4명이 숨졌다. 사정이 이쯤 되니 무기 판매상 외에 모든 국민들이 강력한 법안을 요구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 때문에 총기 규제 법안은 내년 미국의 가장 뜨거운 감자로 부상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한 해 우리 덴버 한인사회에서도 기억될만한 일들이 몇가지 있었다. 콜로라도 박해춘씨 살인 혐의로 기소된 이중희씨의 재판이 열렸지만, 정당방위의 가능성을 놓고 배심원단의 의견이 불일치하면서 최종 재판은 내년 1월로 미뤄지게 됐다. 한인사회의 유일한 양로원인 안나의 집은 10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다. 덴버 한인사회의 노후복지에 커다란 획을 긋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해외에 사는 한국 국민으로서 대통령을 직접 선출할 수 있는 참정권이 이번에 처음 주어졌다는 것도 나라를 떠나 사는 우리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올해 한인사회에는 유독 문화축제가 많은 해였다. 주간 포커스 신문사 주최로 청소년 문화축제가 성대하게 열렸고, 처음 개최된 어린이 동요대회 또한 반응이 대단했다. 특히 청소년 축제는 상금이나 출연자들의 수준이 월등히 향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행사가 지닌 사회적인 의미 또한 크다. 콜로라도 어린이 합창단이 창단되어 첫 공연을 무사히 마쳤고, 한인 합창단의 이웃사랑 연주회도 올해 어김없이 열렸다. 이외에도 한인 커뮤니티 재단이 주최한 케이팝 대회와 교회 안에서 국한 되지 않고 지역사회의 문화생활에 기여하고자 하는 여러 교회들의 콘서트 등 다채로운 행사가 지속적으로 열렸다.
이처럼 행사가 많았다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 많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로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풍요로웠던 한 해였다고 믿고 싶다.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도 커뮤티니 발전을 위해 노력한 이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잠재 의식 속엔 세계 어느 나라의 국민보다 강렬한 운명 공동체 의식이 깔려 있다.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예외 없이 공동체를 생각하는 집단 에너지가 분출됐고, 그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곤 했다. 때때로 서로를 욕하고 헐뜯지만, 대의가 필요할 땐 서로 응원하고 뭉쳤다. 이런 저력을 믿기에 미래를 생각한다. 넉넉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일들이 지갑이 빌수록 민감하게 받아들여진다. 아무래도 마음의 여유가 부족해서일 것이다.
계사년 뱀띠 새해가 곧 밝는다. 연말연시를 맞아 비록 넉넉한 곳간의 인심을 베풀지는 못하더라도 서로 원색적인 비난을 일삼으며 물어뜯는 것만은 피했으면 한다. 올 한해 돈 못 벌었다고 속상해 하지 말고, 그나마 이 정도라도 버틸 수 있게 해준 자신의 의지를 칭찬하고 다독여 주면서 한 해를 마무리 했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는 한국인의 저력을 가지고 있음을 잊지 말자.
동포 여러분, 올 한해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편집국장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