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스타일

2012-10-12     김현주 편집국장

오래 전 얘기지만 필자는 안철수를 좋아했었다. 그는 필자의 대학 시절, 가장 만나보고 싶은 사람 1위에 선정될 만큼 젊은이들의 롤모델이었다. 그런데 요즘 안철수와 전혀 다른 스타일인 싸이가 좋아졌다. 이전까지 필자는 싸이를 못생긴 가수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이들을 짝사랑 했던 혹은 짝사랑하는 팬으로서 한국을 보고 있자니 참 흥미로운 현상이 보인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폭발적 인기를 얻은 안 후보는 모든 이의 귀감이 될 만한 도덕률의 완성자 같은 인물로 그려졌다. 부모와 자식 간에 존댓말 쓰기 등에서 보여주듯, 사소한 일상에서조차 그의 행동은 4대 성인처럼 보였다. 학교 도덕책에서 배운 내용을 그대로 실천하는 듯한 안 후보는 우리에게 약간의 죄의식까지 느끼게 했다.  이에 반해 국제 가수가 된 싸이는 데뷔 시절 ‘엽기 가수’로 국민에게 각인됐다. 시작부터 그의 말과 행동은 도덕과는 거리가 먼‘저급 감성’과 ‘3류 소재’들을 대변했다. 연예인임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더 싼티나는 얼굴, 나보다 더 흉한 몸매, 나보다 더 저질스러운 행동을 하는 싸이에게 편안함에 심지어 우월함까지 느꼈다. 싸이가 대마초 흡입, 군대 재입소 등으로 곤욕을 치를 때도 사람들은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가 아닌, ‘그럼 그렇지’라고 입방아를 찧었다. 안 후보의 출발선이 100%였다면, 싸이는 10% 정도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람들은 기대치가 너무 높아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든 안 후보의 자잘한 실수나 의혹을 매섭게 바라본다. 이를테면 ‘다운계약서 작성’, ‘학력 왜곡’, ‘논문 표절’, ‘재단 허위 문서 작성’ 등 그에게 쏟아지는 논란은 다른 정치인사의 비리와 비교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의 날 선 시선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다. 처음부터 ‘완성된 도덕률’로 출발한 탓에 그는 작은 흠집조차 용인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사람들은 이제 그가 상처 입은 도덕률을 어떻게 회복할지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어디까지 더 내려가나’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반면 싸이의 흠집은 이미 사람들의 관심 영역에서 벗어났다. 이제 누구도 더 이상 그의 대마초나 군 문제를 들먹이지 않는다. 설사 그 얘기가 반복되더라도 아픈 상처가 아닌 흘러간 일상의 추억이나 재밋거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싸이에 대한 사람들의 ‘너그러움’은 그의 세계적 인지도 때문은 아니다. 그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낮은 자세’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는 강남에서 태어났고, 상위 1% 문화에 쉽게 흡수될 수 있었던 부유층 자제였다. 그러나 세상이 요구하는 질서와 규칙에 삐딱한 시선을 투영하며 아웃사이더의 길을 걸어왔다. 담배를 피우다 아버지에게 걸리자, “아버님부터 끊으시라”고 했다. 싸이는 가족에서 ‘미운 오리 새끼’같은 존재였다. 다들 공부를 잘 했지만, 유독 공부와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반도체 회사의 회장인 아버지는 경기고, 연세대를 졸업한 수재였고, 어머니는 경기여고, 이화여대를 졸업한 재원이었다. 누나 역시 학창시절 한 번도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의 우등생이었다. 하지만 싸이가 여덟살 때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쓰인 푯말을 무시하고 아예 잔디밭을 밟고 훼손하자 어머니는 그때부터 아들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는 자수성가한 아버지의 강한 독립심과 원리원칙을 감당하기 힘들었고, 공부를 잘 해야 하는 압박감에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싸이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유일한 즐거움은 집이 아닌 집 밖에서의 소통이었다. 그는 학교에선 오락부장, 응원단장으로 활동했고, 학교 밖에선 물 좋다는 나이트클럽을 전전했다.
얼핏 들으면 부모에게 버릇장머리 없는 자식이라 생각하겠지만 ‘월드 스타’로 성장하기까지는 부모가 만들어준 ‘반항심’과 ‘독립심’이 한몫을 했다. 2007년 군 문제로 재입소할 때, 싸이는 아버지로부터 CF 위약금을 무상으로 받지 못하고 빌려야했다. 어머니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도 늘 밥값을 내고 먹어야 했고, 싸이의 공연엔 부모가 제값을 주고 티켓을 사야 했다. 싸이가 2001년 대마초 문제로 경찰에서 수사를 받을 때, 면회 온 부모는 ‘이제 담배 끊으라’는 충고만 하고 돌아갔다.
이처럼 미운 오리 새끼였던 그가 월드 스타가 되었다.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조금 살만해진 개발도상국쯤으로 여겼던 이들이 ‘강남스타일’ 열풍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의 인기와 더불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브랜드 파워까지 상승효과가 나타나면서 코리아 브랜드를 일등국가로 대접하는 분위기까지 조성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영국 유력 언론에서 요즘 매일같이 코리아 기업을 기사화하는 이유도 강남스타일 열풍의 한켠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그는 미처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의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 덕분에 필자도 싸이를 통해 몇가지를 배우게 됐다. 그 중 하나가 큰 애한테 야단치는 횟수가 확연히 줄었다는 점이다.  무조건 화만 냈던 내게, 그는 아이들의 세계가 만족스럽지 않지만 그냥 관망하는 자세를 가질 수 있는 여유를 안겨주었다. 그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아들과의 관계가 새로 정립되었다. 놀기를 너무 좋아해 미운 오리 새끼로 남을 뻔했던 아들을 향해 백조의 꿈을 꾸게 해준 그에게 감사하고 싶다. 이것이 싸이가 내게 만들어준 엄마 스타일이다. 그의 끝없는 전진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