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녀

2012-09-28     김현주 편집국장

 요즘 콜로라도에도 애정남이 필요한 것 같다. 애정남은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의 준말인데, 한국에서 인기있었던 개그 프로그램이다. 이 애정남은 일상에서 쉬쉬하거나 혹은 판단내리기 애매했던 부분을 입밖으로 끄집어 내어 상황을 명쾌하게 정리해준다. 단순한 개그가 아니라, 사회에 꼭 필요한 불문법을 정해준다는 데 있어 유익했다. 예를 들면 애정남은 전화통화를 하다가 끊겼을 때는 처음에 전화 걸었던 사람이 다시 하고, 어머니 선물은 앞으로 무조건 상품권으로 준비하고, 연인간의 스킨쉽 허용기준도 정해주었다. 신작영화 3편 이상을 함께 봐야 연인이고, 맛집도 지방 1곳을 포함해 3곳 이상을 가야하며, 누적 통화 시간 100시간 이상이 되면 여성은 남성에게 스킨쉽을 허용해야 된다고 말이다. 
  월요일 아침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중년 여성의 격앙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신문에 기사를 낼 것이 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필자는 그녀가 말하는 내용이 정확하게 이해가 되지 않아 몇 번이나 그녀가 말하는 것을 정리해야 했다.  결국 내용은 간단했다. 부동산 리얼터가 3일동안 그녀의 전화를 받지 않으니 그에게 필자가 전화를 해서 그녀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말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리턴 콜을 안 해주면 전화를 받지 않는 그를 신문사에서 고발성 기사를 내야 한다며 엄포를 놓았다. 무슨 사정이냐고 묻자 그건 지금 말해줄 수가 없다고 했다. 더욱 황당했다.
  둘 사이의 자세한 정황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일은 신문사가 개입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화를 건 여성과 필자가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 리얼터에게 전화를 해서 사정을 물어봐달라고 부탁한다면 모를까. 무언가에 화가 나서 전화를 받지 않는 리얼터를 신문에 기사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게 따지면 바람난 동네 아저씨, 싸워서 몇 달 동안 서로 인사도 나누지 않는 옆집 아줌마도 모두 기사거리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불현듯 한인 신문에도 다루어야할 기사와 그렇지 않아야 하는 기사를 정할 애정남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신문의 이론이라는 가장 원론적인 교과서에도 나와있듯이 기사에는 엄연히 가이드 라인이 정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로라도에는 신문의 기사 내용을 마음대로 정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오늘 필자는 애정남 아니 애정녀가 되어 몇가지를 정해보고자 한다. 첫째, 신문사에서 모든 제보를 기사화 할 수 없다. 둘째, 뒷받침할 근거 자료 없이 기사를 적으면 안된다. 일방적인 개인 비방 기사는 오히려 신문의 신뢰도만 낮출 뿐이다. 셋째, 콜로라도 뉴스들 중 기자 실명화된 기사만 읽어라. 책임지고 기사를 작성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식당에서도 그렇다. 아무리 공짜반찬이라고 해도 너무한 사람들이 있다. 첫번째 나온 반찬을 얼른 먹고, 두번째 나온 반찬까지 다 먹고, 세번째 반찬을 요구해 남은 것을 싸가는 얌체들이 있다. 물론 이들은 자신들이 얌체라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늘 필자는 여기서 애정녀가 되어 보려고 한다. 식당에서 반찬을 요구하는 것은 최대 두번까지 가능하다. 단, 웨이츄레스가 자발적으로 가져오는 것은 받아도 된다.
  마트에서는 어떨까. 물건을 바꾸거나 환불을 할 때의 규칙을 정해보도록 하자. 과자나 통조림을 절반 이상을 먹거나, 3일전에 사간 깐 마늘을 바꾸러 오면 반가워할 마트는 없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다. 옛말에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을 수 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했다. 인상 팍팍 쓰고, 목소리 높혀야 잘 바꿔 줄 것이라는 구태의연한 사고는 이제 버려야 한다. 이제부터는 물건을 바꾸러 갔을때 웃는 얼굴과 존댓말은 무조건 사용하도록 한다. 그래야만 서로 기분 좋게 마무리를 할 수 있다.
  인사를 할 때도 그렇다. 사람을 만나면 인사를 하면 되는데, 눈이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얼른 피하고, 전화하는 척 하면 금방 분위기가 서먹해진다. 이민 초기, 한국 사람이 별로 없을 때에는 한국 사람만 봐도 달려가서 인사를 했었다. 이름을 몰라도 한국 사람이라는 것 자체만으로 마냥 반가웠던 것이다. 애정녀로서 정한다. 눈이 마주치면 피하지 말고 무조건 인사하자. 모르는 사람에게도 눈 웃음으로 인사하자. 따지고 보면 콜로라도 한인은 모두 아는 사람이다. 
부동산 거래를 할 때도 그렇다. 바이어의 욕심에 여러 명의 리얼터에게 물건을 찾아 달라고 의뢰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바이어는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다고 해도, 각각의 리얼터는 시간과 돈을 들여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바이어는 가끔 대단한 왕이나 된 것처럼 리얼터 위에 군림하고자 한다. 리얼터를 이용해 먹을 만큼 이용하고는 어느 날 갑자기 다른 리얼터를 찾아 떠난다. 자, 여기서 애매한 것을 정해보자. 떠날 때 떠나더라도 그 동안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해준 리얼터에서 왜 다른 리얼터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정도는 설명해 주도록 한다. 아무리 미국에 산다고 해서, 자기 편한 것은 한국식으로, 자기 불편한 것은 미국식으로 정리하는 것은 이기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 외에도 법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제시되어야 할 기준들이 너무 많다. 우선 이번 주에는 한국의 최대 명절인 추석이 있다. 평소 소홀했던 가족과 친지들이 생각나는 시기이다. 이번 기회에 이렇게 정하자. 일년에 두번, 설날과 추석에는 친지에게 꼭 전화를 한다. 내가 전화를 먼저하면 자존심 상한다는 생각에 속끓이며 전화 기다리지 말고, 먼저 전화기를 들도록 한다. 내가 먼저 전화하는 것으로 정하자.           <편집국장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