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레미 송의 힘

2012-09-13     김현주 편집국장

요즘 아이돌 가수가 부르는 노래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필자가 어린시절이었던 80년대, 우리 부모님들도 가수 박남정의 ‘널 그리며’ 라는 노래가 나올 때마다 그랬다. 무슨 노래인지 전혀 모르겠고, 춤만 눈에 들어온다고 말이다. 필자는 그 때 처음으로 부모님이 우리랑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박남정의 노래 템포가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그러나 트로트에 익숙해져있던 어르신들의 귀에는 엇박자의 디스코 곡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부모가 유행에 뒤떨어졌다고 생각했던 우리가 이젠 부모가 되었다. 중, 고등학생의 자녀를 둔 부모들은 이 얘기가 와 닿을 성 싶다. 아이돌 가수들이랍시고 우르르 나와서 화려한 옷을 입고 현란한 춤과 예쁘장한 얼굴로 정신없이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도통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노래 가사는 TV 화면에서 캡션처리를 해준다고 해도 따라 읽을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간다.  가사의 의미를 곱씹으며 들었던 아버지 세대의 트로트, 우리 세대의 발라드와는 천지 차이다.  이런 노래에 열광하고, 가수라는 직업에 자신의 꿈을 던지고 싶어하는 자녀들과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더욱 그렇다. 점차 미국인이 되어 가는 아이들과 한국의 정서를 꼬옥 안고 사는 부모들은 결국 시간이 갈수록 서먹한 사이가 되어 버린다. 설령 함께 캠핑을 간다고해도 그 당시 뿐이다. 여행을 가서도 아이폰과 아이패드와 같은 신기술에 정신이 팔려 대화할 시간도 거의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점점 어려워 진다. 더 멀어지기 전에 함께 할 수 있는 무엇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부부가 같은 취미를 가지는 것이 좋다는 얘기가 이런 뜻일 게다. 공통된 관심사가 있어야 관계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새학기가 시작된 첫 날,  큰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왔는데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내심 걱정이 되었다. 새로 전학간 학교인데다 영어를 능숙하게 하지 못하는 부모를 둔 탓에 공지사항을 잘못 알아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은 아닐까, 아니면 전학생이라고 왕따를 당한 것은 아닐까 등 큰 아이의 짜증섞인 얼굴을 보는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쳐갔다.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보니, 엄마는 몰라도 되는 일이라면서, 묵묵히 학원갈 준비만 하고 있었다.  학원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선생님께 이메일을 보내야 하나, 아니면 같은 반 학부모에게 연락을 해 봐야 하나?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한국에 있는 언니가 보내준 동요 CD를 틀었다.  악어떼 노래가 나올 때 ‘악어떼’ 후렴구를 몇 번 따라 하더니, 개구리 노래가 나올 때는 조금씩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도레미 송이 나오니 아예 큰 소리를 내어 노래를 불렀다. 도레미 송이 끝날 때에는 큰 아이도, 작은 아이도, 필자도 신이 나 있었다. 노래 한 곡을 함께 불렀을 뿐인데 분위기가 이렇게 화기애애해지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큰 아이는 자기가 아는 노래를 엄마가 부른다는 것을 더욱 신기해했다. 그날 밤, 큰 아이는 전학간 첫 날인데다, 스쿨 버스도 처음 타서  버스에서 누구와 함께 앉아야 할지 고민스러웠다고 했다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 때 필자는 생각했다. ‘내가 미국 동요를 잘 모르니까, 우리 아이들에게 한국 동요를 가르쳐야겠다’고 말이다. 노래, 특히 동요야 말로 아이들의 세계에서 어른들도 함께 할 수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한국 동요를 가르치는 일은 한인 부모들의 의무 이전에 본인들을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지금 4, 5, 60대 부모들은 한국 동요를 많이 배웠다. 하지만 미국에서 한국 동요를 배울 수 있는 시간과 동기가 제한적이다. 그래서 기획한 것이 바로 동요대회이다. 포커스 신문사에서는 매년 청소년 문화축제를 개최해왔다. 올해는 지난 6월 청소년 문화축제를 스모키힐 하이스쿨에서 개최했었다. 쟁쟁한 실력자들의 등장으로 관객까지 놀랐던 청소년 문화축제는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무대 렌트비, 상금, 진행비 등을 합쳐보니 1만달러가 넘게 소요됐다. 물론 행사진행, 사회자, 심사위원들의 자원봉사가 아니었다면 지출은 더욱 컸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동요대회는 후원없이, 포커스 신문사 자체적으로 행사를 치룰 생각이다. 포커스 문화센터에서 개최하면 장소 대여료도 필요없을 테고, 아이들 상금만 준비하면 된다. 규모가 좀더 커지면 후원을 받아야겠지만 첫번째 행사인만큼 필자의 월급으로 준비를 해 볼 생각이다.
이번 행사를 통해 주간 포커스 신문사는 4세부터 5학년까지는 동요대회, 중 고 대학생을 위한 청소년 문화축제를 개최함으로써,  명실공히 콜로라도 청소년 문화축제 모두를 아우르는 행사를 치르게 되었다. 앞으로의 열릴 행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 진행되고 있는 행사들을 발전시키는데 관심을 모으는 일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이번 동요대회를 통해 한국 동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이 대회가 훗날 부모와 아이들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