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영웅들
런던 올림픽은 미국에 사는 우리들에게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동질감과 자긍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8일 현재 한국은 금메달 12개, 은7, 동6개를 획득해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다.애초에 런던 올림픽에 출전하면서 한국은 ‘금메달 10개에 10위권 진입’이라는 목표를 세워두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메달이 쏟아져 나오면서 일찌감치 목표달성을 한 탓에, 지금 대한민국의 기세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는다. 지난 세월 올림픽을 위해 땀흘린 것을 생각하면 대표팀 모두는 이미 준비된 영웅이었다.
비록 미국 시민권자라고 해도 미국이 이기는 것보다 한국의 승리에 더 큰 박수를 치는걸 보면 스포츠야말로 우리 국민들을 하나로 묶는 최고의 무기라고 할 수 있다. 영원한 비교 대상일 것같았던 일본은 고작 2개의 금메달 밖에 획득하지 못한 상태여서 일본은 더이상 한국과 비교자체가 우스운 수준으로전락했다.
한국의 선전이 이렇게까지 자랑스러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심판의 오심(誤審)으로 얼룩진 시간들을 당당히 이겨냈기 때문이기도하다. 런던 올림픽 오심의 시작은 우리의 마린보이 박태환 선수에서부터 시작됐다. 400m자유형 예선에서 1등으로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실격처리되면서 한국인은 물론이고 전 세계인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우리측의 끈질긴 이의제기를 통해 판정이 번복됐고, 결승전에 진출해 은메달을 획득했다. 물론 수영종목에서 은메달은 대단한 성과이긴 하지만 오심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감만 아니었더라면 금메달을 딸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두번째 오심은 유도의 조준호 선수였다. 조 선수는 일본의 에비누마 선수와 유도 8강전 경기를 끝내고 처음에 3:0으로 판정승을 받았던 결과가 단 몇분만에 0:3으로 번복되면서 패하고 마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판정번복의 충격과 팔꿈치 부상에도 불구하고 3, 4위전에서 값진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번 런던 올림픽의 오심의 결정판은 바로 펜싱이었다. 우리의 기대주 신아람 선수는 4강전에서 연장전 1초를 남겨놓고 유리한 상황에 있었다. 점수는 5-5 동점이었지만 컴퓨터 랜덤으로 정해지는 우세권이 신아람에게 있었기 때문에 동점으로 끝나면 신아람의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시합종료까지 1초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시계 작동 요원의 실수로 인해 경기가 끝난줄 알았던 신아람 선수는 무방비로 공격을 받았고 결국 패하고 말았다. 이외에도 한국의 가장 인기 종목인 축구 8강전에서도 석연찮은 판정으로 영국에 두차례나 패널티킥을 허용했지만 결국 투혼을 발휘한 한국 선수들은 승부차기 끝에 승리를 거두어 올림픽 출전 최초로 4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자랑스런 장면이 어디 이뿐이겠는가. 유도 송대남 선수는 두 체급이나 올려가며 서른 셋에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남자 양궁 개인전에서 첫 금메달을 딴 오진혁도 14년 땀방울이 몸에 밴 서른한 살늦깎이 선수이다. 갓 스무 살 김장미는 사격경기 마지막 다섯 발에서 승부를 뒤집었다. 어처구니없는 오심에 꺾이지 않나 걱정스럽던 수영 박태환과 펜싱 신아람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펜싱여자 사브르 개인전에 출전한 김지연은 어떤가. 세계랭킹 1위에 이어 2위까지 꺾고 올림픽 무대에서 세계 정상에 올랐다. 한국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안겨준 양학선 선수는 비닐하우스에서 자라 넉넉지 못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연습해 결국은 소름이 끼칠 정도의 완벽한 기술을 선보여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퉁퉁 부은 눈으로 경기를 마친 김현우 선수, 그는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66kg 이하급 결승에서 금메달을 따내 효자종목 레슬링의 부활을 이끌었다. 한국 레슬링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은 8년 만에 처음이다. 이 모든 것들이 전 국민의 가슴에 꽂히면서 찜통같은 무더위를 감동의 눈물로 잊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홍명보가 이끄는 축구 대표팀 또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4강 브라질 전에서 패하기는 했지만, 3, 4위전에서 만나는 일본만 이긴다면 금메달을 딴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은 스톡홀름 올림픽 이후100년 만에 금메달을 노리던 축구 종가(宗家) 영국을 무너뜨렸다. 대한민국이 해방 후 처음 태극기를 앞세우고 올림픽에 출전했던 런던, 바로 그곳에서 우리 젊은이들은 64년 만에 세계 축구 4강에 올라섰다. 영국팀은 대부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일급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선수들은 상대 선수들의 화려한 이력에 결코 주눅들지 않았다. 골키퍼 이범영이 다섯 번째 영국 키커의 슛을 쳐내고 기성용이 마지막 골을넣은 것으로 기적이 완성됐다. 기성용은 한일월드컵 8강전 스페인과의 승부차기에서 승리를 확정 지었던 10년 전 홍명보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러한 감동의 순간 하나하나를 이 작은 지면에 적기에는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아쉽다. 태권도 금사냥도 이제부터 시작이다. 남은 올림픽 기간동안 어떤 기적과 눈물의 드라마가 펼쳐질지, 최종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준 선수단 모두에게 기립 박수를 보내고 싶다. 대한민국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