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당잡힌 꿈

2012-07-19     김현주 편집국장

 생각해보니 몇 년 동안 칼럼을 쓰면서 도박에 대해 쓴 적이 없는 것 같다. 필자 스스로가 관심이 없는 분야이고, 더욱이 여기서 몇 자 끄적인다고 해서 도박 중독 증세가 나아질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도박 때문에 이혼을 결심한 주변 가정을 보면서 도박의 심각성을 새삼 생각하게 됐다.

  한국에서 연예인들과 재벌집 가족들의 원정 도박은 이미 물오를대로 올랐다. 최근 한국의 유명 사학재단인 신직학원의 이사장인 김용식씨는 원정도박에서 630만달러를 날리며 ‘역대 최대 규모의 원정 도박’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한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40년의 역사를 가진 이 재단의 수익금이 김씨의 돈줄이었다. 그는 2012, 2011년 도박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후 계속 도박자의 길을 걸으며 결국 이 지경에 이르렀다.
 방송인 신정환의 필리핀 원정 도박 사건도 한 때 떠들썩했었다. 그는 2005년에 도박혐의로 기소돼 한동안 방송 출연 정지를 당했고, 강원 정선 강원랜드에서 1억8천만 원을 빌린 뒤 갚지 않은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었다. 물론 이 두사람 외에도 사회적 인지도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도박에 미쳐있다. 하지만 돈많은 그들은 도박빚에 허덕여도 나름 해결 할 수 있는 길이 있다.

  그런데 지금 콜로라도의 한인사회에서 도박 중독에 걸린 사람들은 도박 빚을 어쩔 것인가. 설령 도박 빚이 없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잃은 것도 빚과 다름없다. 한 번 도박에 빠져 들면 애비도, 마누라도, 자식도, 개의치 않는다. 도박 중독증으로 센츄럴 시티에 살다시피 하는 한인들의 인구가  족히 2천명이 된다고 한다. 특히 주말이나 국경일 같은 휴일이면 한 기계 건너 한인들이 앉아 있다고 하니 통탄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중독자들 때문에 오랫만에 기분전환 삼아 일년에 한두번 올라가는 사람들도 똑같이 노름에 빠진 한인으로 비쳐진다.  

  자신 뿐 아니라 가족을 망치는 일인 줄 뻔히 알면서 왜 도박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카지노나 경마를 단순한 레저로 생각하지 않고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데 그 이유가 있다. 외국인들은 놀이동산에 가는 것처럼 가볍게 즐기기 위해 카지노를 찾지만, 한인들은 돈을 따려고 달려들다 보니 중독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콜로라도 한인 비즈니스 업계는 벌써 몇 년째 불황이라는 단어를 달고 살지만, 카지노 사업이 날로 번창하는 이유에는 한인들의 협조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씁쓸한 현실이다.
  한국은 언제부터인가 세계 최고 수준의 도박중독 국가가 됐다. 올해 도박중독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무려 3백만 명, 한국 인구의 6.1%에 해당하는 숫자라 하니 이만저만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 한민족의 피가 덴버 이 곳에서도 적용된 것일까. 주변에서 도박 때문에 망한 사람들을 망라하려면 밤을 샐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단 100달러만 주머니에 있어도 무조건 그 날은 산에 올라가는 날이라고 정하고, 오후 스케줄을 아예 제쳐 버렸던 한 사람이 있었다. 얼마 전 그 사람은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갔다. 가지고 있던 모텔, 집을 홀랑 날렸고, 타고 다니던 자동차의 페이먼드를 못내 은행에서 가져갔다.

  또, 지난 20여년 동안 집보다 도박장에서 밤을 샌 날이 많았던 한 남자는 결국 아내와 아이들에게 외면당하고, 이혼을 하게 됐다. 지난 세월이 고통이었던 아이들과 아내는 별거를 결정하면서 비로소 평화를 되찾았다. 아내는 도박장에 뺏긴 렌트비, 아이들 학원비, 심지어 자신의 자동차 담보를 생각하면서 지난 세월에 고개를 젓는다. 그녀는 지금까지 애들 아빠인 이유로 이혼을 꺼렸지만, 이젠 아이들을 위해서 이혼을 해야한다고 결정했단다.

  도박에 중독된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중독 과정은 대략 이랬다. 재미 삼아 가끔씩 도박을 시작한다. 흥분을 느낀다. 우연히 대박을 경험한다. 같은 흥분을 얻기 위해 도박 시간이 점점 늘고 거는 돈의 액수가 차차 커진다. 그러다가 이제는 도박 사실을 주변에 숨기기 시작한다. 빚이 늘어나면서 가족들에게 무관심해진다. 어제 잃었으니 오늘은 딸 것이라고 확신한다. 따고 나면 어제 땄으니 오늘도 딸 것이라고 다른 계산을 한다. 과거 크게 땄던 경험만 기억하고 그 쾌감을 잊지 못한다. 도박을 하지 않으면 초조하고 불안해 어디에도 집중할 수 없다. 이 증상을 견디기 어려워 또 도박장을 찾는데 이쯤 되면 스스로 도박을 그만두기 힘든 수준에 이르게 된다.

  가족이 반기지 않는 당신, 더 이상 가족에게 의미 없는 당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당신이 되기 전에 그만 두어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도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불치병도 아니다. 도박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가족들이 도박을 단순히 의지의 문제로 생각하기 때문에 매번 빚을 갚아주고, 잘못을 덮어주는데 이는 마약중독자에게 마약을 주는 것과 같다.    가족의 꿈을 도박장에 저당잡힐려고 미국에 이민온 것이 아니지 않은가. 도박에 빠진 이들이여, 오늘 저녁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한번 바라보길 바란다. 진정 자신의 어릴적 꿈이 노름꾼이었는지를 말이다.   <편집국장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