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젓가락
요즘 덴버 한인타운은 먹거리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올해초 그때그집 한식당을 시작으로 세종관, 이마트 식당, 서울 팔레스, 용궁, 신사동 바베큐 등 대도시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한인들이 경영하는 식당들이 연이어 새롭게 문을 열었다. 인구 5만이 넘는 도시보다 한식당 수가 더 많게 됐다. 식당 수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이제 LA에 가면 덴버 식당의 맛이 그리울 정도이니 맛도 훌륭하다. 그래서 고객의 입장에서는 식도락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시기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인사회는 암울했다. 세종관 식당만 봐도 그랬다. 몇달전 주인이 바뀌어 새롭게 문을 열어 다행이지만, 10년 넘게 한인 사회와 함께 해왔던 세종관은 문을 닫으면서 ‘어렵다, 어렵다’ 하는 말이 더이상 빈말이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 주었다. 타운내 한인식당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가격이 싼 점심 시간에는 많은 음식을 팔아도 남는 장사가 아니다. 또, 저녁에 술과 갈비를 많이 팔면 점심 때보다 수익이 높긴 하지만 식재료 값의 상승으로 이 또한 수지 타산이 맞다고는 할 수 없다. 식당의 입장에서는 가격 인상에 대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면초가에 놓여있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가격을 올린 식당에 대해서도 한인들의 반응은 비난보다는 오히려 ‘이해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지난해에 많은 한인 비즈니스들이 문을 닫았다. 식당, 세탁소, 노래방, 카페가 문을 닫고 심지어 보험, 융자, 부동산업 관련자들도 전업이나 폐업을 많이 했다. 그만큼 한인 비즈니스 업계에도 변동이 많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러한 걱정들을 뒤로 한 채, 올해는 한인 비즈니스들이 힘차게 전진하고 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물론 새 식당들이 오픈을 하면 기존에 영업을 하고 있는 다른 식당에게 악영향이 미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식당들이 많을수록 경쟁이 많아 장사가 안된다’라는 생각은 한국의 먹자 골목을 보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의 취향이 다르듯, 느끼는 음식맛도 달라 각자의 고객은 대부분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냉면을 봐도 그렇다. 가는 면발을 좋아하는 사람, 굵은 면발을 좋아하는 사람, 시원한 육수를 좋아하는 사람, 담백한 육수를 좋아하는 사람, 육수에 양념이 많이 들어간 것을 좋아하는 사람, 양념없이 보기에 깨끗한 국물을 좋아하는 사람 등 천차만별이다. 이들은 이미 자신들이 좋아하는 맛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식당의 단골 손님은 거의 고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소문이다. 워낙 작은 동네이다 보니 사람들의 입소문을 무시할 수 없다.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일도 동포 때문이고, 울게 만드는 것 또한 동포 때문인 것이 동포 사회의 현실이다 보니 차라리 한인 사회를 떠나는 편이 낫다는 결정을 내린 이들도 봤다. 식당들이 많아지면서 악소문도 늘었다. 당연한 수순이지만 여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을 하다 보니 이런저런 말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새로 오픈한 식당뿐 아니라 기존에 있던 식당들까지도 덤으로 도마 위에 오르는 일이 종종 있다. 어느 식당은 면발이 퍼졌다, 어느 식당은 국물이 너무 짜다, 어느 식당은 반찬이 너무 적게 나온다, 어느 식당에서는 1시간을 기다렸다, 주문한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 반찬이 상했다 등 식당업체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불평들 뿐만 아니라, 식당 오너들의 인간성까지 평가하는 시기성 소문들이 난무하고 있다.
문득 어릴 적 어머니가 해 주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천당과 지옥에는 똑 같이 진수성찬이 나오는데 천당에 있는 사람들은 살이 찌고,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갈수록 야위어 갔다. 왜 그럴까.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아주 긴 젓가락을 사용해야 하는데, 너무 길어서 본인의 입에 음식을 넣기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천당에 사는 사람들은 마주 보고 앉아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음식을 먹여주며 차려진 진수성찬을 모두 먹지만,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끝까지 자기 혼자서 다 먹겠다는 욕심으로 긴 젓가락으로 버둥거리면서 결국 하나도 먹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상대방을 배려할 줄 모르고 자기 욕심만 챙기겠다고 마음먹는다면, 같은 밥상이 차려져도 천당과 지옥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마음을 곱게 쓰면 모두 잘 살 수 있다. ‘이 집은 이래서 안 되고, 저 집은 저래서 안 되고’가 아니라 ‘이 집에는 이런 메뉴가, 저 집에는 저런 메뉴가 맛있다’며 서로를 치켜 준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천당에 차려진 밥상이 부럽지 않는 밥상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몇 년간 물가 인상률은 상상을 초월했다. 식재료비는 물론이고 기름값과 운임비도 크게 올랐다. 이를 가격에 반영하면, 3년 전에 비해 적게는 3배, 많게는 최고 7배까지 비용이 상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인 타운 내 식당들의 음식 가격은 3년 전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없다.
가격도 저렴하고, 먹을 만한 곳도 많으니 고객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이 때문에 한인사회는 전에 없는 호황의 시대가 예견되고 있다. 이런 환경을 만들어준 식당들에게 쓴소리 보다는 칭찬의 소리를 전하고, 식당을 운영하는 당사자들 역시 남의 식당을 험담하기 이전에 자신들의 메뉴개발에 정진하는 건전한 모습을 기대하고 싶다. <편집국장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