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고등학생 시절, 극장에 가면 영화가 시작되기 전 애국가를 불렀다. 애국가가 흘러나오면 관람객 모두는 자리에서 일어나 애국가를 제창했다. 어느날 학교 친구들과 은밀히 영화를 보러갔다. 어김없이 애국가를 불러야할 시간이 돌아왔다. 그런데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은 그냥 앉아있었다. 모두 서서 애국가를 부르고 있는터라 앉아 있는 사람이 유독 눈에 띄인 건 사실이었다. 그때 필자 뒤쪽에 앉아있는 한 남학생이 그를 향해 컵을 던졌다. 두번이나 그의 뒷머리를 향해 던졌는데, 그는 꿈쩍도 하지 않고 그대로 앉아있었다. 컵을 던진 그 남학생은 애국가를 앉아서 부르는 것을 절대 용서하지 못한다는 기세였다. 맨 앞에 앉아있던 그 사람은 영화가 끝났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졌다. 그런데 맨 앞자리에 앉아있었던 그는 불편한 다리를 목발에 의지한 채 출입구 쪽으로 아슬아슬하게 걸어나갔다. 주위는 미안함으로 어수선해졌다. 뒤를 돌아보니 애국심에 불탔던 그 남학생 역시 얼른 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컵을 던진 그 남학생과는 초등학교를 함께 다녔다. 2년 선배였는데, 학교에서는 껄렁한 옷차림과 머리에 무스를 듬뿍 바르고 다닌 탓에 일명 ‘노는 아이’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문방구에서 매번 스케치북을 사가면서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순진한 소년의 모습도 남아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4년후에 그 영화관에서 그를 처음 봤고, 이후 그를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 얼마전 어릴 적 친구로부터 메일이 한통 왔다. 노는 아이였지만 잘생긴 외모 탓에 친구가 한때 짝사랑을 했기 때문에 그의 소식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군대를 제대하고, 선생님이 되었다고 한다. 그것도 특수학교 선생님 말이다. 놀라웠다. 그런 날라리 학생이 선생님이 되다니. 문제아에서 선생님이 되기까지 그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고등학교 1년을 휴학하고 방황의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 그를 이끌어 준 사람은 바로 미술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선배가 자주 드나드는 술집으로 찾아가 술도 마시고, 집으로 찾아가 밥도 함께 먹으며 친구처럼 지냈다. 그 세월이 선배를 더이상 빗나가지 못하게 한 힘이 되었다. 그날 영화관에서 애국가를 제대로 부르지 않는다고 컵을 던졌을 때만해도 그는 기세등등했다. 하지만 그는 곧 그의 행동이 이기적인 발상에서 나온 군중심리에 불과한 것임을 바로 깨달았을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한동안 그를 더욱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이유가 되었다. 그런 선배를 잡아준 미술 선생님은 현재 그 고등학교의 교장 선생님으로 재직하고 계신다.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던 한 친구는 매일같이 싸가는 쌀 반 보리 반 도시락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의 친구는 달랐다. 그 반에서 제일 잘 사는 그 애는 텔레비젼도 있었고 피아노도 있었다. 하얀 쌀밥에 달걀 반찬이 떨어지지 않았고 가끔씩은 소고기 장조림도 가지고 왔다. 점심 시간만 되면 그 애는 보란 듯이 도시락 뚜껑을 힘차게 열어 제쳤고, 다른 아이들은 그 도시락을 보고 기가 팍 죽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봄 소풍을 가는 날이었다. 그날만은 친구도 김밥이 먹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영락없이 보리밥 도시락을 하나 싸줄 뿐이었다. 떼를 쓰며 퍼질고 앉아서 우는 친구에게 엄마는 10원짜리 하나를 쥐어주었다. 10원짜리 하나에 힘을 얻은 그 친구는 보리밥 도시락을 메고 소풍을 갔다. 선생님은 보물찾기를 한차례 시키시더니 드디어 점심을 먹으라고 했다. 그 친구는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숨어 도시락 뚜껑을 막 열려고 하는데 그때 선생님의 호각소리가 들렸다. 선생님은 각자가 가지고 온 도시락을 모두 가지고 오게 했다. 밥은 밥대로, 김밥은 김밥대로 한군데 모으곤 커다란 함지박 두 개를 꺼내 한 군데에는 김밥을, 또다른 함지박에는 그냥 밥을 담았다. 섞여진 김밥은 누구네 김밥인지 전혀 알 수 없게 되었다. 대부분 보리밥 도시락을 가지고 온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함지박에 달려들었다. 마음대로 김밥과 비빔밥을 퍼먹을 수 있었던그 친구는 그렇게 맛있는 밥은 처음 먹어 봤다며 아직까지 추억을 되새긴다. 30년도 더 지났지만, 그때의 선생님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단다. 코흘리개 2학년 아이들을 따스한 마음으로 보살펴주셨던 아빠같은 선생님. 우리나라에, 시골 한 구석에 그런 멋진 선생님이 계셨다는 사실이, 그리고 지금도 그런 선생님들이 계실거란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단다.
다음주 5월15일은 한국의 스승의 날이다. 지난 5일 미국 교사의 날(National Teacher’s Day)과는 사뭇 어감이 다르다. 옛말의 임금과 부모와 스승은 동격이라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을 보아도 그렇다. 더러 스승의 자격을 가지지 못한 이들이 있어 논란이 일지만, 그래도 선배의 미술 선생님과 친구의 담임 선생님과 같은 분들이 아직까지 건재하기에, 지금의 살만한 세상이 만들어졌으리라 믿는다. 여기 콜로라도에도 매년 모교의 스승들을 초청해 모교와 스승에 대한 예우를 다하고 있는 동문이 있다. 서울 대광고등학교 동문은 졸업한지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모교에 대한 사랑을 계속해서 실천하고 있다. 보기에도 참 훈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추억 속에 존재하는 스승이 한 분쯤은 모두 있을 것이다. 다음주 스승의 날을 맞아 그 추억 속의 선생님의 안부를 찾아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다. 또한, 스승의 날을 맞아 이 시대의 진정한 선생님들에게 지면으로나마 한아름의 꽃다발을 전하고 싶다. <편집국장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