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한 홍보대사

2012-02-23     김현주 편집국장

 최근 덴버 한인사회에는 여러가지 고소고발 사건으로 불미스러운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지루하게 진행되고 있는 사건에 점차 무덤덤해지면서 확 달아올랐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냄비근성을 확인하기도 하고,  때론 법정공방을 하고 있는 이들은 보면서 이름이 거론되는 양측 모두를 비슷한 수준이라고 치부하면서 무관심으로 돌아서곤 했다.

 하지만 최근 열렸던  콜로라도주 전 한인회장들 vs 박헌일 전 뉴스타 덴버 지사장간의 법정 공방은 한인사회에 큰 의미를 남기고 일부 일단락되었다. 바비킴 전 콜로라도주 한인회장의 고소로 입건된 박헌일씨의 형사 재판은 장장 12시간이 넘게 진행되었지만 배심원들의 의견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미평결로 끝을 맺었다가 몇 주 후인 지난16일 결국 검사측이 이를 기각시켰다. 이는 사건 같지도 않은 사건으로 시간과 혈세를 더이상 낭비하게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재판은 배심원 재판이었다. 판사 단독으로 판결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배심원 6명의 의견이 일치해야지만 결론이 나는 것이기에 더욱 의미가 크다. 지난달에 열린 첫 공판에서 배심원들은 바비킴씨가 제출한 증거물인 녹음기에서 욕설과 함께 죽여버리겠다 라고 녹음된 박헌일씨의 음성을 정확히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심원 6명 중 4명이 박씨에게 무죄를, 1명이 반반의 의사를 밝혔고 단 1명만이 유죄라고 했다. 그들은 박헌일씨가 전화로 욕설을 하고 협박성 멘트를 남긴 이유에 주목하면서, 피해자라고 나선 바비킴씨가 더이상 피해자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배심원단, 즉 미국인들이 한국의 언어 문화와 한국인의 정서를 정확하게 이해했다는 것이 이번 재판결과의 첫번째 의미라고 볼수 있다. 

 지금까지 한인들은 이민와서‘죽인다’라는 말로 참으로 곤혹을 많이 치렀다. 우리는 입에 달고 사는 말이지만, 미국사람들의 정서에는 어떤 상황에서도‘죽인다’라는 말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런 줄 알고 바비킴씨를 포함한 주변인 몇 명은 이번 재판을 자신있게 시작했을 것이다. 실제로 타주에서는 아이의 죽음 후에 ‘내가 죽였다’라고 자책하는 부모가 오해받아 체포되어 실형을 산 경우도 있었고, 싸우다가 ‘죽여버리겠다’라고 말한 것이 화근이 되어 오랜 법정 공방끝에 벌금을 내고 나온 남성도 있었다. 이런 전례와 확실한 증거 자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사 측에서 이번  소송을 기각시킨 것은 전미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판례이다. 박헌일씨측 변호사인 강주영씨가 주류사회에 한인 사회의 정서를 제대로 관통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바비킴씨와 그 주변인들 또한 큰 일을 했다고 본다. 주류사회에 한인사회의 언어문화를 인식시켜주는 계기를 만들어주었으니 말이다.

 녹음기에서 나오는 박헌일씨의 욕설을 듣고도, 박씨가 욕할수 밖에 없었던‘동기와 전혀 죽일‘의도가 없었음’을 노랑머리, 파란눈을 가진 미국인들도 알아차렸다. 처음부터 박씨가 죽이겠다는 의도가 없다는 것은 이 재판을 시작한 사람들이 더 잘 아는 사실일 것이다. 빤히 아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바비킴씨는 판사와 배심원들이 한국인의 정서와 언어문화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얄팍한 생각으로 일을 벌였다가 망신만 당한 셈이다.

 이번 사건의 담당 검사와 그의 선임 검사들이 회의를 거쳐 소송을 기각 시키기로 결정한 것은, 법의 가치로 볼때 재판까지 갈 만한 사건이 아니라는데 있다. 이런 일로 또다시 배심원을 선정해야하고 법원에서 12시간을 넘게 시간과 돈을 소모한다는 것 자체가 법을 집행하는 본인들에게도 한심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번 결정은 더이상 자질구레한 일로 법원을 들락거리지 말라는 경고이다. 이것이 이 재판의 두번째 의미이기도 하다.

 이번 소송은 바비킴씨 외 여러명의 전 콜로라도 한인회장들이 박헌일씨의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한 편지를 뉴스타 부동산 본사, 콜로라도 부동산 커미셔너 등 이곳저곳으로 보낸 것이 발단이 됐다. 이 사실을 알고 화가 난 박헌일씨가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보이스 메일에 메세지를 남겼고, 그 메세지가 협박성이라는 이유로 바비킴씨는 박헌일씨를 형사 고발했고, 이와 관련해 바비킴씨와 박준서 전 회장은 박씨에게 민사소송도 함께 걸었다. 하지만 이번 결과로 봐서는 정신적 피해와 명예훼손은 박헌일씨가 요구해야 될 것 같다. 여하튼 이번 재판 결과는 미국 어디에서나 사용될 만한 판례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소송 관계자들의 공도 크다. 부끄럽지만 한국정서와 언어문화를 널리 알린 부분은 홍보대사감이다.

 그동안‘자칭’한인회를 대표한다는 사람들이 고소 챔피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고소를 남발하다보니 시비를 가리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고 피해다녔던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 소송을 마지막으로 말꼬리잡아 법정을 농락하고, 한인사회를 분열시켜온 역사를 청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편집국장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