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아는 지혜
김교철 목사
지혜로운 인생, 성공하는 인생에는 세 가지 눈이 있어야 한다.
첫째는,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하며, 둘째는 시대와 역사를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하고, 셋째는 하나님을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한다. 얼마 전 교회에 우연치 않게 노 장노님이란 분이 방문하셨는데 이분은 내과 전문의 이면서 선교 사역을 어찌나 열심히 하시던지 마치 의사는 부업이고, 본업을 북한 선교 사역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두 내외분이 우리 교회에 오셔서 얼마나 큰 도전과 비젼을 주셨는지 모두들 뜻하지 않은 큰 은혜를 받게 되었다. 이 분의 말씀에 따르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때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는 강력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가셨다. 그래서 독자들과 성도들이 때를 알아서 이 세대 지 말에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모든 일에는 기한이 있고, 모든 인생도 때가 있다.’
말할 때가 있고, 침묵할 때가 있으며, “예”라고 답할 때가 있고, “아니오”라고 부정 할 때가 있다. 나설 때가 있고, 물러갈 때가 있으며, 행동할 때가 있고 기다릴 때가 있다. 심을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으며, 일이 일어나도록 허용할 때가 있고,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때가 있다.
보통 ‘때’를 지칭하는 의미로 자주 등장하는 헬라어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그리고 ‘호라’가 있다. 예를 들면,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갈 4:4)라는 바울의 구속신학적인 역사로 보면 ‘크로노스’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외치는 것이며, ‘카이로스’는 예수님의 갈릴리 첫 선포에서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요 17:1)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예수님의 기도에서는 ‘호라’가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크로노스’는 연대기적인 시간으로, ‘카이로스’는 뜻이 담겨져 있는 종말론적인 시간으로, ‘호라’는 그 양자를 다 동반한 시간으로 이해되기도 하나, 본문 상에서 그 구별이 뚜렷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어떻든 중요한 것은 시간의 흐름과 시간의 의미가 함께 어우러져 시간의 내용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때를 알고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나서신 분이심을 우리는 알고 있다. 특히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처음부터 이미 자기 자신의 ‘때’를 아심으로 말씀하시고, 행동하셨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때’란 ‘하나님의 때’이다.
‘때가 이르렀다’(요 17:1)는 말을 통해 나타나는 예수님의 시간관은 시간과 역사의 흐름이 단순히 우연성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필연성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이것이 단지 자동적으로 예정된 운명론이란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시간 속에 하나님의 뜻과 의지가 담겨 있다는 예수님의 확신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란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 분의 주관 하에 놓여 있는 피조물이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생각과 언어, 그리고 행동은 ‘이 때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결정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수난의 길조차도 자발적으로 나아가는 자유의 시간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의 ‘때’란 곧 수난의 길로 가는 때이며, 동시에 하나님과 더불어 누릴 영광의 때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때’를 자기의 삶에 끌어들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현존을 경험하는 것이다. 우연성이 아니라 필연성, 곧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때’를 깨닫는 것이다. 인생을 단순히 사물과 사건에 대한 인과응보적인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더 나아가 자신의 삶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뜻과 목표가 철저히 배어 있음을 알고 행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시간을 단순히 흘러가는 과거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지막 종말의 자리에서부터 지금 현재로 다가오는 시간으로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이 왔다’는 개념은 말하자면 ‘시간이 흘렀다’는 것과는 달리 우리로 하여금 시간을 새롭게 이해하고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어제에서 오늘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일에서 오늘과 어제를 파악하므로 후회와 좌절이 아닌 새 소망으로 시간을 살게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시간의 이해는 우리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시간과 일에 의해서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일을 자기 삶 속에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시대가 악하다. 때를 아끼라’(엡 5:16)
‘지혜 있는 사람은 언제 어떻게 그 일을 하여야 하는 지를 안다’(전 8:5)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선 사람들은 마땅히 다음과 같이 물어야 할 것이다.
‘나의 때(하나님의 때)는 언제인가?’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하나님의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성경에 사울이라는 청년이 나온다. 이 청년은 처음에는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는 바람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 멸시, 천대, 그것도 부족해서 감옥에 잡아가두고 신실하게 예수 믿는 스데반 집사를 죽이기까지한 인물이다. 그러나 나중에 예수님을 만남으로 진정한 진리를 깨닫고 변화가 되어서 인생의 가장 위대한 질문인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하나님의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때를 알고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지를 깨달은 이 청년은 후에 바울이라는 사도로 거듭나서 소아시아 전역을 복음화 하고, 영혼들을 회복시키는 위대하고 가장 가치있는 일을 하게 된다. 우리교회도 지금 이 ‘때’를 다시금 깨닫고 가장 값진 일들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야 된다. 독자들도 인생의 시대와 역사를 아는 눈과 ‘때’를 알아 인생의 가장 값진 일을 이루는데 동참 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