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인권 조례
아주 오래 전 타국에서 살 때였다. 명절을 맞아 한국 사람들 몇 가정이 타도시에 있는 한국 떡집에 떡을 주문한 적이 있었다. 배송비를 아껴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전화를 받은 떡집 주인은 많이 주문했으니 배송료는 내지 않아도 된다며 다음에도 많이 주문해달라고 했다. 뜻밖의 친절에 기분이 좋았다. 떡이 도착하고 얼마 후,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러 봉지를 주문했는데 무게를 달아보니 모두 몇 백 그람씩 모자란다는 것이었다. 민망했다. 배송비 빼준다고 해서 좋아했는데 남은 건 없었다. 물론 손해를 본 것도 아니었지만, 굉장히 친절을 베푸는 듯했던 주인에게 속았다는 사실에 기분이 무척 나빴다. 전화해서 따져야했지만 속이는 사람과 무슨 이야기를 하랴 싶어서 그만두었다.
공평한 저울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일까? 조금이라도 이익을 남겨야 하는 장사꾼과 몸무게의 진실을 외면하고 싶은 나같은 사람일 것이다. 공평한 저울이라고 해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무게가 다르게 나온다. 카펫 바닥과 타일바닥에서 같은 무게를 재도 결과가 다르게 나온다. 바닥이 평평하지 않으면 저울도 그 역할을 다 못하는 것이다.
지난 26일 서울시 교육청은 서울시보에 게재하는 형식으로 ‘학생 인권 조례’를 공표했다. 공표를 앞두고 여론이 들끓었다. 종교계와 보수파, 교권은 앞장서서 반대했고 진보 쪽은 지지를 보냈다. 소셜네트워크에서 논쟁도 뜨거웠다. 특별히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정말 싫어하는 내색이었다. 나도 이 조례안을 읽어보았다. 어디서 많이 보던 문장들이다. 익숙한 문장들은 내 아이의 학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심지어 더 강력한 조항이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제 막 발표된 ‘학생인권조례’를 두고 왜 이렇게 말들이 많은 것인가?
논란이 되는 항목들은 ‘성별 정체성 등의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체벌 금지와 두발·복장 자율화, 임신출산에 따른 차별 금지, 교내 집회 보장, 소지품 검사금지 등의 조항’ 등이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성별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은 동성애를 조장하는 것이요, 체벌 전면 금지는 교권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임신출산에 따른 차별 금지는 미성년자의 출산을 장려하는 것이요 집회 보장은 청소년들을 정치에 끌어들이는 것이라 하여 반대한다. 소지품 검사 금지는 흉기 소유를 조작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인권조례 자체를 폐지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을 빨갱이로 만들어 북한처럼 만들려는 속셈’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이 대목에서는 웃음이 난다. 북한에 인권이 있는지. 교사들의 반대도 나름 일리는 있다. 권리만 가득하고 의무는 없는 이 조례를 학생들이 악용한다면, 가뜩이나 다루기 힘든 아이들을 어쩌라는 말이냐는 것이다. 그럼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는 것이 답일까? 아이들에게도 인권이 있고 이 권리에 대해 가르쳐야한다. ‘도가니’ 같은 사례를 보면 학생인권은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몇 가지 조항이 안고 있는 위험성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그야말로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는 격이다.
생각에도 저울이 필요하다. 평평한 바탕에 공정한 저울추를 가진. 특별히 사회적인 약속이 되는 정책 등에 관해서는 더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반대도 찬성도, 상대방이 귀기울여 들을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논리와 근거가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모두를 위한 최선의 것을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