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의 축복?

황상숙 기자

2012-01-26     황상숙 기자

 한 때 인터넷에 떠돌던 작자미상의 글 중에 인상깊게 읽은 글이 있다. 제목은 ‘95세 노인의 수기’였다. 주인공은 젊어서 열심히 일했던 직장에 남아달라는 부탁을 거절하고 60세에 은퇴했다. 남은 인생은 덤이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없이 죽기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35년의 세월이 흘러 95세 생일이 되었을 때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35년을 더 살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살지 않았을텐데, 그때는 스스로가 늙었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은 나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인생의 3분의 1을 그냥 보낸 것이  비통했다. 10년 후, 105세 생일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한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이 글을 읽고 나는 크게 감명을 받았다. 남편은 어머님께 이 글을 전했다.  이 때만해도 이 글을 그저 ‘참 좋은 글’이었을 뿐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40이 가까워질수록 ‘인생의 절반쯤에 와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최근 등장한 한 단어가 나를 바짝 긴장하게 만든다.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100세까지 장수하는 신인류를 지칭하는 용어다. 유엔에 따르면 평균수명이 80세를 넘는 국가가 2000년에는 6개국뿐이었지만 2020년에는 31개국으로 급증할 것이라고 한다. 한국에는 현재 1971년생 남성이 가장 많다. 이들 중 절반이 94세 이상 살게된다. 동갑내기 여성은 더 높은 비율로 98세까지 살게 된다고 고려대 통계팀은 말한다. 좋은 소식이다. 인류는 끊임없이 어떻게 하면 더 젊게 더 오래 살 것인가를 고민해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 10명 중 4명은 100세 인생을 축복으로 여기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년기가 너무 길고 빈곤과 질병, 고독감 같은 노인문제와 자식에게 부담을 줄까봐 우려하기 때문이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어쩌면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평생을 자식 뒷바라지를 하고 대학을 보내고 결혼자금까지 대주지만 병들고 힘없어지면 외면당하는 고독한 삶의 현실이 영화 속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국민 10명 중 4명은 노후준비를 전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688만 베이비붐 세대가 마땅한 은퇴 대책이 없고 자산의 75%가 부동산이기 때문에 5~10년간 소득이 없으면 주택을 처분해야 한다.

 고령화 시대를 대비하는 방책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다. 플로리다 주의 ‘세라소타’는 노인인구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다. 해변에도 마트에도 식당에도 노인들로 넘쳐난다. 따뜻한 기후 때문에 난방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상대적으로 높지않은 물가 때문에 은퇴한 이들이 세라소타에 많이 모이게 되었다. 생활비가 많이 들지 않는 저렴한 이동식 주택, 노인들을 위한 커뮤니티, 무료로 운영되는 진료소도 이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노부모를 간호하는 가족들을 위한 세미나도 고령화를 함께 살아가는 세대의 아픔과 현실,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사람이 사람을 돕는 것’이 고령화 시대의 답이라는 것을 세라소타를 보며 배울 수 있다.
 시대는 점점 100세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한국 사회의 모든 제도와 시스템, 국민 의식은 여전히 80세 시대에 머물러 있다. 연금, 복지, 보건, 국가 재정 및 교육, 취업, 정년도 60세에 은퇴해서 80세까지 사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100세 시대를 위한 대비책이 없다. 100세를 바라보는 개인적인 준비와 사회적인 준비가 없다면 ‘장수’는 더이상 축복이 아닌 재앙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