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 킹 데이를 기념하며
이하린 기자
지난 16일은 마틴 루터 킹 데이였다. 미국 흑인 해방 운동 지도자이자 침례교회 목사였던 마틴 루터 킹 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 목사는 1968년에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흑인 청소부의 파업을 지원하다가 39세의 젊은 나이에 백인 남성의 총에 의해 암살당하기까지 간디의 비폭력 저항주의에 입각하여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을 철폐하고, 흑인과 백인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썼다. 그리고 1964년에는 최연소의 나이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미국의 간디, 대통령보다 더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는 킹 목사는 달변가로도 유명했다. 킹 목사가 1963년 워싱턴에서 한 ‘I have a dream”이라는 연설은 지금까지도 사람들로부터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명연설이다.
“백년 전, 한 위대한 미국인이 노예해방을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백년 후에도 흑인은 아직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백년후에도 흑인들은 인종차별이라는 굴레 속에서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백년 후에도 흑인들은 풍요의 바다 한가운데 빈곤의 섬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끔찍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이자리에 섰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언젠가는 옛 노예의 아들과 옛주인의 아들이 조지아의 붉은 언덕에서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을 거라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나와 내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닌 인격에 의해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되기를 바라는 꿈이 있습니다. 흑인 소년, 흑인 소녀가 백인 소년, 백인 소녀의 손을 잡고 형제, 자매처럼 걸어가기를 바라는 꿈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그렇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킹 목사의 정의를 향한 의지와 신념을 보인 이 날 연설은 미국 인권 운동에 큰 획을 그었다. 39년의 짧은 삶을 살다간 킹 목사는 일개 흑인 목사로 폄하되기에는 미국인들에게 남긴 영향이 너무 컸다. 킹 목사가 비명에 간지 반세기도 되지 않아 미국은 흑인 대통령을 배출할 정도로 흑인들의 위상은 백인에 버금갈 정도로 동등해졌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도 진정으로 인종 차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와지지 못하고 있다. 마틴 루터 킹 데이를 맞이하여, 킹 목사가 진정으로 원했던 세상은 이런 것은 아니었을텐데 라는 생각에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표면적으로는 모두가 동등한 세상,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아직도 피부색, 재력, 학력, 집안 배경, 외모 등 나눌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다. 정말 평등하게, 아무런 편견이나 스스럼없이 내 가치를 평가받고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은 과연 도래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