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셨습니다

2011-12-22     김현주 편집국장

 오늘 필자는 2011년도의 마지막 칼럼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지난 일년을 뒤돌아 보면‘어렵다’라는 말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다. 어렵다 해도 이렇게까지 어려웠던 적이 없었다. 정말이지 2011년은 인고의 한 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올 한해 콜로라도 한인사회의 주요뉴스를 정리하다보니, 콜로라도는 역시 조용한 동네라는 사실이 실감났다. 두세가지 사건사고를 제외하고는 덴버는 아주 평범한 일상을 보낸 한해였다. 한인사회의 일은 아니지만 단연 이슈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소식이다. 아직 장례식이 치러지지 않았지만 전세계가 이 사람의 죽음을 일제히 보도했고, 카디피에 이어 김정일의 죽음까지 사라져가는 독재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형식적으로나마 세계 평화의 청사진이 제시되기도 한다.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북한의 권력 구조를 예측하고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곳곳에서 비상대책 회의가 열리고 있다. 진심으로 슬퍼하는 북한 주민들과는 입장이 다른 우리는 슬픔보다 안도의 한숨을 지었을 법하다.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에 기뻐하자, 큰 아이가 말했다.“엄마 사람이 죽었는데 왜 모두 기뻐하지?”라고 말이다. 참, 난감한 질문이었다. 그래서 간단히 Bad Guy 였다고 설명했다. 아이가 아직 어리다는 생각에 차일피일 미뤄왔던 한국의 역사 공부를 내년부터 시작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 해야할 일이 한가지 더 늘어난 셈이다

 어찌되었건 지난 한 해 우리 덴버 한인사회에서도 기억될만한 일들이 몇 있다. 세계 대통령인 반기문 유엔 총장과 탈북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천기원 목사가 덴버를 방문했다. 그렇게도 찾고 싶었던 박해춘씨의 유골이 발견되었고, 유일한 한인 양로원인 안나의 집이 드디어 새 모습을 드러낸 것도 올해 주목할 일이다. 그리고 어린이 합창단과 한인 문예원이 창단된 것도 풍성한 문화생활을 예고하고 있다. 콜로라도 한인합창단의 꾸준한 봉사 활동도 커뮤니티를 위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5월에 열렸던 포커스가 주최한 제2회 청소년 음악회는 그 규모도 성장했지만, 행사가 지닌 사회적인 의미 또한 컸다. 또, 한인 입양아 20주년을 맞아 준비했던 입양아 기획 시리즈도 한인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행사가 많았다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 많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로는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웠던 한해였다는 생각이 든다.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도 커뮤티니 발전을 위해 노력한  이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서로를 응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힘든 현실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  1960~70년대 한국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자 한국의 광부와 간호사들은 독일에 가서 달러를 벌어 보냈다. 독일로 파견된 광부들은 지하 1천 미터 막장에서 탄가루 묻은 검은 빵을 먹으면서 서로를 응원했고, 광부와 간호사 2만여명이 연간 1천만 달러를 한국에 부쳤다. 1964년 12월, 독일 함보른 탄광을 방문한 모국의 대통령 앞에서 이들은 참고 참았던 눈물을 한없이 뿌렸다. 또 10여년 전 외환위기 때는 2개월 동안 350만 명이 장롱 속 금붙이를 꺼내 225톤, 1억7000만 달러 상당을 모았다. 전체 가구 중 23%가 동참한 것이었다. 1년 뒤 신용평가회사 S&P는 한국의 신용등급을‘투자적격’으로 올리며‘금 모으기 운동’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잠재 의식 속엔 세계 어느 나라의 국민보다 강렬한 운명 공동체 의식이 깔려 있다.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예외 없이 공동체를 생각하는 집단 에너지가 분출됐고, 그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곤 했다. 때때로 서로를 욕하고 헐뜯지만, 대의가 필요할 땐 서로 응원하고 뭉쳤다.  이런 저력을 믿기에 미래를 생각한다. 넉넉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일들이 지갑이 빌수록 민감하게 받아들여진다. 아무래도 마음의 여유가 부족해서일 것이다. 임진년 용띠 새해가 곧 밝는다. 연말연시를 맞아 비록 넉넉한 곡간의 인심을 베풀지는 못하더라도 서로 원색적인 비난을 일삼으며 물어뜯는 것만은 피했으면 한다. 올 한해 돈 못 벌었다고 속상해 하지 말고, 그나마 이 정도라도 버틸 수 있게 해준 자신의 의지를 칭찬하고 다독여 주면서 한 해를 마무리 했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는 한국인의 저력을 가지고 있음을 잊지 말자. 
동포 여러분, 올 한해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편집국장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