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약속

2011-12-01     김현주 편집국장

 한국에서는 요즘 한미 FTA 비준안 처리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한미 FTA 비준안에 서명하면서 표면적으로는 분란을 종식시켰다. 그래도 일부 국민과 야당의 반발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우선 한미 FTA (Free Trade Agreement/자유무역협정)부터 알아보자. 이는 국가간의 관세 장벽을 완화함으로써 상호간 교역 증진을 도모하는 특혜 무역협정이다. 관세철폐에 주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근에는 상품의 관세 철폐 이외에도 서비스 및 투자 자유화까지 포괄적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2011년 11월 현재, WTO에 통보된 지역 무역협정 발효건수는 310건인데, 1995년이후 전체의 86%에 해당하는 267건이 발효된 것으로 보아 자유무역협정은 국가간의 대세가 되었다.

 반대에 앞서 협정이 체결되기를 바라는 업체도 많다. 한국의 자동차, 섬유분야 등의 업체들은 벌써부터 환호하고 있고, 관세 철폐로 인해 한국 국민들 또한 다양한 물건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어 장바구니 부담도 덜 수 있어 무조건 반대는 않고 있다. 일본은 협정이 성사될 경우 미국시장에서 한국보다 뒤쳐질 것이라고 위기감을 표할 정도여서 체감 이익이 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다. 크게 농업과 의료업계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한국의 농업계는 두말 할 것도 없고, 제약와 의료계도,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이 커질 것라는 점도 이 협정을 반대하는 이유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은 결단을 내렸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한국은 경제영토 세계 3위의 국가로 도약할 것이라는 가능성에 사인을 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무역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이기때문에 우리의 살 길은 수출이라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내주어야 한다는 이치다. 우리 것만 꼭 쥐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 돌이켜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에 대해 반대해왔다. 필자도 광우병 소동으로 이어지는 소고기 수입 논란이 일었을 때는 그랬다. 하지만 최근 시도때도 없이 제동을 거는  야당과 좌파단체를 보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반대의 수위가 도를 넘어섰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진짜 반대하는 이유가 퇴색되어 버렸다. 지난주 한미 FTA 비준안 강행처리에 맞서 민주 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국회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일이 바로 그렇다.

 국회는 헌정사 초유의 최루탄 테러까지 당했지만 국회의장은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잘 말해주는 부분이다. 이렇게 국회와 집권당이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야권은 김 의원을 ‘의거(義擧)’로 떠받들고, 좌파 인터넷 매체는 ‘불멸의 김선동’이란 프로그램까지 내보냈다. 사건 당일 본회의장으로 연결되는 통로의 유리창을 깨트리고 난입한 혐의로 민노당 당직자 2명은 검찰에 고발되었다. 그런데 정작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트린 민노당 김 의원에 대해선 아직 아무런 조치가 없다. 국회가 아닌 인권 코리아 등의 고발로 인해 그에 대한 수사가 몇 일 전 간신히 착수되었을 뿐이다. 

 그 어떤 중요한 사안이 되었던지 국회에서 최루탄을 사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루탄은 민간인이 보유할 수 없고, 이를 폭발시키는 행위는 범죄행위라는 게 경찰의 해석이다. 그런 최루탄을 본회의장에 몰래 들여와 동료 의원들 앞에서 터트린 행위는 의정 질서가 용인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폭력이 분명하다. 최루탄 투척이 의원 면책특권에 포함될 순 없다. 이번 사건을 유야무야 넘길 경우 19대 국회에선 화염병이나 다이나마이트가 등장하지 말란 법이 없다. 이는 한미 FTA에 대한 찬반 여부와는 별도로 형사 문제로 접근할 사안임이 분명하다. 현행 법질서를 짓밟은 범법자가 민의의 대변자일 순 없는 것이다. 

 한국이나 이곳 덴버 한인사회가 아직까지 살기 좋은 이유은 ‘보이지 않는 약속’을 잘 지켜왔기 때문이다. 밥 먹고 내는 팁도 줄만큼 주어야 하고, 생일 케잌 촛불은 주인공이 불어야 하고, 신발 벗고 사는 집에 가서는 신발을 벗어야 하고, 내뱉은 말을 지키지 못했을 때는 발뺌과 핑계보다는 이해를 구해야 한다.  이는 보이지 않는 약속이다. 물론 계약서와 같은 문서 따위에 사인하는 일이 아니기에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경찰에 잡혀가진 않는다. 그러나 지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아직 세상은 살만한 것이다.  신문사 일을 하다보면 광고주만이 아니고 독자들과의 전화통화도 자주한다. 비록 인간성은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저 사람은 참 비지니스를 잘한다’라고 생각을 갖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업체들의 대부분이 장수를 했다. 비결을 살펴보면 한결 같이 보이지 않는 약속을 잘 지켜온 사람들이었다. 국회의원은 국민에 대한 신뢰를 져버리지 않게 처신하는 것이 그것에 해당될 것이고, 비지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고객에 대한 배려가 그것에 해당될 것이고, 인간 관계에서는 내 잘못을 먼저 인정하는 것이 그것에 해당될 법하다.  <편집국장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