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이길 수 없는 게임
이하린 기자
올해 6살인 엘리는 유치원 때부터 학교 체스 클럽에 등록을 해 체스를 시켰다. 하지만 체스 클럽에 집어넣어만 놓았지, 애가 체스를 어떻게 하는지, 얼마나 늘었는지는 도통 관심을 안가졌다.
체스 클럽이 끝난 후 “누구랑 오늘은 경기했어? 이겼어?” 정도만 물어보는데, 맨날 하는 말이 “누구누구랑 몇번을 했는데 내가 다 이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체스에 천부적인 소질을 가진” 엘리에게 체스를 배우기로 했다. 그런데 배우다 보니 엘리가 체스에서 무적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드러났다. 엘리는 체스의 새로운 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예를 들어 엘리의 비숍은 대각선으로 갈 수 있고 다른 말들을 뛰어넘을 수 있지만, 상대방의 비숍은 대각선으로만 갈 수 있었고 다른 말을 뛰어넘는 것은 금지되었다. 엘리의 퀸은 앞으로, 뒤로, 대각선으로 마음대로 갈 수 있었지만, 상대방의 퀸은 상황에 따라 앞으로만 갈 수 있거나 두 칸만 전진할 수 있는 식이었다. “왜 네 말은 이렇게 할 수 있는데 내 말은 그게 안되느냐?”고 항변하면 엘리는 “원래 체스 룰이 이렇다”고 우겨댔다. 그러다 혹시라도 자기가 불리해지면 슬픈 사슴 같은 눈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동정에 호소하거나 짜증을 내며 체스판을 엎어버렸다. 상황이 이러니 엘리와 체스를 하려면 그냥 질 각오를 하고 재미 삼아 체 스를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지난 주에 엘리는 학교에서 친구인 알레한드로와 체스를 했다. 알레한드로는 처음으로 체스 클럽에 들어온 신참 중에 신참이었다. 엘리는 알레한드로를 맞아 체스를 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알레한드로를 무참하게 밟아버렸다. 알레한드로는 엘리의 룰에 따라 게임을 하며 모든 말을 다 잃었고, 집에 갈 시간이 다 되었을 때는 달랑 킹을 포함해 말 세개를 남겨놓은 상태에서 게임을 끝낼 수 밖에 없었다. 엘리는 의기양양한 표정이었고, 풀이 죽은 알레한드로는 전멸하다시피한 자신의 체스판과, 말 하나만을 잃은 채 자신의 진영을 향해 포진한 엘리의 체스판을 번갈아 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살다 보면 엘리와 하는 체스 게임처럼 좀처럼 이기기가 힘든 게임이 있다. 정말 내가 능력이 되지 않아서 지는 경우도 있지만, 충분히 능력이 있지만 온갖 부조리와 편법으로 인해 처음부터 불리한 위치에 놓여 게임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어쩔 수 없이 지는 경우도 많다.
경찰이나 정부와 같은 공권력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사람들도 이러한 경우에 속한다. 이들은 처음부터 승리가 힘들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다는 의지로 승산없는 싸움을 시작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아들을 잃은 신디 쉬한(Cindy Sheehan)은 반전 어머니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수 천명의 미군들의 어머니들 가운데 용감하게 나서서 미국 정부의 대 이라크 전쟁을 비난한 아머니는 신디 쉬한이 처음이었다. 쉬한은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텍사스주의 크로포드 농장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지만 부시는 끝끝내 쉬한을 만나주지 않았다. 쉬한은 아마 처음부터 이기기 힘든 싸움임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부시는 그녀를 만나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전쟁의 참상과 반전 사상을 심어주었다. 신디 쉬한은 이번달 초에 “새크라멘토를 점령하라” 시위대 30명을 이끌었다. 경찰은 이들을 체포하겠다고 위협했지만, 변호사들은 언론, 종교, 집회의 자유를 정한 미국의 헌번 수정 제 1조를 들어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힘으로 보자면 쉬한은 절대 미국 정부를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쉬한은 미국 정부에게 한 명의 미약한 힘이 얼마나 많은 힘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고 보면 절대 이길 수 없는 게임은 없을지도 모른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듯, 기적이든 요령이든 운이든 이변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