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이하린 기자
지난 1일, 한국의 의정부지법 형사합의 11부는 경기도 동두천에서 10대 여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주한미군 K이병(21)에 대해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미군 범죄로는 1992년 ‘윤금이’사건 이후로 두번째로 무겁고2001년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개정 이후 가장 엄한 처벌이라는 것만으로도 재판부가 이번 사건을 매우 중대하게 다루고 있는 셈이다.
지금이라도 한국 정부가 주한 미군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것은 매우 올바른 처사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주한 미군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국민들의 분노를 자극해왔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효순, 미선양 사고 당시에도 사고 경위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용의자들을 체포하는데 있어서 미국 정부의 눈치를 살펴 반미 감정에 불을 지폈다.
내부 고발 사이트인 위키릭스가 공개한 주한 미국 대사관의 비밀 외교전문을 보면 미국과 한국 정부 사이에 방위비 분담금 규정이 있다. 한국 국방부는 100억달러(10조여원)에 달하는 주한미군 재배치 비용 중 절반을 한국이 부담한다고 발표했지만, 주한 미군은 분담금 전용분과 민간투자 임대사업(BTL-민간 사업자가 시공 뒤 수십년동안 사용료를 받아 수익을 회수하는 제도)을 포함할 경우, 한국 몫의 부담은 전체 비용에 93%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미군은 한국 땅에 군사를 배치하는 비용을 버젓이 한국 정부에 물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일본이나 독일 등 다른 나라의 경우를 살펴보면 미군은 대부분 주둔비를 그 나라에 지불하고 자기 군대를 주둔시키며, 기지 임대비용까지 모두 부담한다. 반면 한국은 복닥거리는 한반도의 금싸라기 땅을 내주고도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미군이 한국 땅에서 버젓이 범죄를 저질러도 미국 정부의 눈치를 보며 이를 은폐하기가 급급하고 미군병사가 유유히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막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왔다.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미군측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를 해 신속한 재판이 이루어질 수 있었지만, 미군 당국으로부터 이런 식의 순순한 협조를 늘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성폭행이나 살인, 강도 등의 중범죄를 저지른 미군에 대해서 기소 전이라도 우리 측이 신병인도를 요청하면 미군이 반드시 응하도록 SOFA를 재개정해야 한다. 현행 SOFA 규정은 미군이 강력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현장에서 붙잡지 못하면 기소 전까지 우리 경찰이 구속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이 때문에 범행 후 소속 부대로 돌아간 K 이병도 기소 때까지 불구속 상태로 놔둘 수 밖에 없었다.
주한 미군 당국도 미군 범죄가 한미 동맹을 뒤흔드는 심각한 파장을 낳을 수 있음을 명심하고 SOFA 재개정에 성의를 보여야 하며, 장병들 군기 확립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에 더이상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끌려가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천명해야 하며, 요구할 것은 당당히 요구하는 외교적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한국 전쟁 이후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한국의 위상은 눈부시게 상승했다. 이제 한국은 더이상 미군이 던져주는 초콜렛을 받아먹으며 구걸하던 나라가 아니다. 이제 한국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연설 때마다 배울 것이 많은 나라라는 극찬을 듣는, 명실상부한 “형제 나라”로 급부상했다.
한국 정부는 이만큼 한국을 끌어올린 것이 주한 미군이 아니라, 한국의 국민들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검정 고시를 준비하며 꿈을 키워나가던 어린 소녀가 미군에 의해 강제로 유린되고 짓밟힌 것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임을 미국 정부와 미군에게 강력히 보여준 것은 그만큼 한국의 위상이 올라갔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국 국민들의 사고가 ‘높은 나라’ 사람의 사고로 변했는데, 한국 정부는 아직도 못사는 나라의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받을 돈이 있으면 당당히 요구해서 받고, 개정할 법이 있으면 당당히 요구해서 개정하는 배짱과 자신감 있는 정부의 모습이 절실하다.